유럽의 병자(The Sick Man of Europe)라는 멸칭의 저작권자를 굳이 정한다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오스만제국(튀르키예의 전신)을 상대로 크림전쟁(1853~1856)을 일으키기 전에, 쇠락해 가는 오스만제국을 ‘유럽의 병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뒤 ‘유럽의 병자’는 경제적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조롱하는 관용어처럼 쓰인다.
1960~70년대의 영국, 1990년대의 독일에 이어 이탈리아(2000년대)와 프랑스(2010년대)에도 유럽의 병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 표현을 가장 즐겨 쓰는 매체가 자본주의 세계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인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다. 최근 독일을 유럽의 병자로 처음 호명한 것도 이코노미스트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만 하더라도 유럽 경제의 견인차였던 독일이 다시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받는 신세로 전락한 사연은 꽤나 극적이다. 독일이 중국(수출)과 러시아(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만큼 추락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국의 보수 일간지와 경제지는 독일의 경기 침체 소식을 전하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특히 탈원전 정책 탓에 독일이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고의적인 오보다. 탈원전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계획했던 것이고, 에너지 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관계를 끊으면서 비롯한 것이다. 오히려 독일은 재생에너지 선도 국가로 빠르게 체질을 개선하는 중이다. 알이백(RE100)을 비롯해 기후보호라는 새로운 무역 장벽이 본격화하면 적어도 에너지 분야에서 독일은 다시 무서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지적 가운데, 한국 언론이 일부러 전하지 않는 대목도 있다. “지난 몇년 동안 독일 전통 산업의 탁월한 성과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투자 부족을 가렸다. 안일함과 재정 건전성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 공공투자가 너무 적었다. 전반적으로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보기술 투자는 미국과 프랑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한국 언론의 선택적 보도 이유는 뭘까? 이념적인 부자감세로 사상 최악의 세수 펑크를 내고도 “안일함과 재정 건전성에 대한 집착으로” 연구개발(R&D)을 비롯한 “공공투자”를 대폭 줄인 윤석열 정부를 불편하게 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이재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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