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ㅣ과학칼럼니스트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천재와 광기’(인터넷서점에서 찾아보니 지금은 ‘천재 광기 열정’이란 제목으로 바뀌었다)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니체 등 천재 예술가 8명의 정신세계를 다채롭게 조명한 책으로, 한마디 감상평을 하자면 ‘불멸의 창조물을 남긴 불행한 사람들을 너무 경외할 건 없다’ 정도일까.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면, 6500여종에 이르는 포유류 집단에서 인간 자체가 ‘천재와 광기’를 지닌 종이 아닐까. 비슷한 덩치의 유인원에 비해 뇌 크기가 세배나 되는 인간의 인지력은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천재 이상이다. 이처럼 똑똑한 존재임에도 절제력에서는 오히려 못할 때가 많아, 배가 불러도 맛있으면 계속 먹고(쾌락성 섭식) 때로는 약물에 빠져들기도 한다. 반면 동물들은 짝짓기 시기에만 이성을 잃는다.
크기의 관점에서만 인류의 뇌 진화를 보면, 천재의 측면은 설명할 수 있어도 광기(‘무절제’가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의 측면은 수긍하기 어렵다. 소위 ‘이성의 뇌’라는 대뇌피질이 팽창했으니 절제력도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나야 하지 않을까.
2018년 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는 ‘인류 기원을 설명하는 신경화학 가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미국 켄트주립대 인류학과의 오언 러브조이 교수팀은 인류 진화 과정에서 뇌 크기뿐 아니라 뇌 신경전달물질의 조성도 바뀌면서 인간 고유의 감정과 행동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뇌의 측좌핵에서 전체 뉴런 밀도 대비 ‘신경펩타이드Y’(NPY)의 액손(신경세포) 길이와 밀도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영장류 13종 가운에 인간(맨 오른쪽)이 유독 높다. 고칼로리 음식이나 술(알코올), 마약의 유혹에 인간이 유독 취약한 이유다. ‘미국 국립학술원 회보’ 제공
대뇌피질이 팽창하면서 그 아래에 있는 소위 ‘원시적인 뇌’에 대한 통제력이 커지기만 한 게 아니라 원시적인 뇌 역시 나름대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었지만, 현대사회라는 특수 상황에 놓이자 후자는 오히려 무절제라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지난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는 5년 전 가설을 지지하는 실험 결과를 담은 러브조이 교수팀의 논문이 실렸다. 사람을 포함해 영장류 13종을 대상으로 원시적인 뇌의 한 구조인 측좌핵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신경펩타이드Y’(NPY)의 분포를 분석한 결과, 사람만 유독 관련된 신경망의 밀도가 높았다.
‘신경펩타이드Y’는 지방이나 당 같은 영양분 섭취를 갈망하게 하고 알코올과 약물중독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동물실험에서 측좌핵에 신경펩타이드Y를 투여하면 쾌락성 섭식이나 중독 행동이 강화된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 신경펩타이드Y 수치가 높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런 유혹에 약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절제력을 잃는 쪽으로 진화했을까.
바로 뇌를 키우기 위함이다. 끊임없이 신경 신호가 오고 가는 뇌는 에너지를 많이 먹는 조직이다. 뇌는 성인 인간 몸무게의 2%를 차지하지만, 정적인 상태에서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비한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뇌가 세 배가 커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에너지가 풍부한 음식에 대한 갈망과 이를 얻었을 때 만족감(보상)이 큰 신경화학 체계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대뇌피질의 팽창을 이끈 원동력이 동시에 우리를 무절제한 존재로 만든 신경화학 체계라니 아이러니다. 오늘날 환경에서는 누구나 비만이 될 수 있고, 아차 하면 약물중독에 빠질 수 있지 않나.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문구를 패러디하며 이 글을 마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