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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노동자는 온몸으로 싸운다

등록 2023-10-03 18:44수정 2023-10-04 02:38

“그 ‘만화방 옆 노동상담소’를 안순애씨한테서 물려받은 사람이 바로 나였잖아.” 안순애씨는 뜻밖에도 “그랬어? 내가 그만두면서 그냥 문 닫은 것 아니었어?”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기억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노동상담소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인생의 획을 긋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었지만 안순애씨와 같은 노동자에게는 지나온 삶의 숱한 흔적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열개의 우물’ 스틸컷.
영화 ‘열개의 우물’ 스틸컷.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상영작 ‘열개의 우물’을 봤다. 김미례 감독은 일찍이 20년 전, 레미콘회사 기사였던 노동자들이 회사 방침에 따라 레미콘 차량을 불하받아 허울뿐인 ‘사장’이 된 뒤,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3년 동안 벌인 지난한 투쟁을 추적한 ‘노동자다 아니다’를 자신의 첫 장편으로 세상에 내놓아 주목받았던 사람이다.

‘열개의 우물’에서 김미례 감독은 1980년대 인천 만석동·화수동·십정동 빈민지역에서 활동했던 김현숙씨를 통해 알게 된 동일방직 노동자 안순애씨를 중심에 놓고, 다른 부문 운동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빈민지역 탁아운동의 주역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또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삶의 흔적들을 ‘채굴’하듯 추적한다. ‘열개의 우물’은 ‘십정동’이라는 동네 이름에서 따온 제목일 텐데 그 첫번째 우물이 안순애씨인 셈이고, 앞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우물물처럼 길어 올리는 연작이 가능하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남달리 각별한 느낌으로 이 작품을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80년대 초 내가 바로 그 만석동·화수동·십정동에서 김현숙·안순애와 같이 어울렸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막 사회운동으로 진입했던 초년병 시절 처음 만난 사람들이 안순애씨를 비롯한 동일방직 노동자들과 김현숙씨를 비롯한 도시빈민 활동가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 인생의 천운 같은 만남이었다.

‘열개의 우물’에서 주인공 안순애씨와 김현숙씨는 인천 주안 6공단 ‘만화방 옆 노동상담소’에서 활동했던 추억에 관해 비교적 길게 대화를 나눈다. 그 노동상담소를 안순애씨에게서 물려받아 운영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삼익가구에서 노조를 결성했다가 “개박살이 난”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날 그 삼익가구 회사 정문 앞에서 유일하게 잡혀갔던 사람도 바로 나였다.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와 나중에 화수동의 바로 그 ‘민들레 탁아방’에서 다시 만났을 때, 안순애씨가 “경비들 여섯명이 달랑 들고 가니까 꼼짝도 못하고 잡혀가더만…”이라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안순애씨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 ‘만화방 옆 노동상담소’를 안순애씨한테서 물려받은 사람이 바로 나였잖아.” 안순애씨는 뜻밖에도 “그랬어? 내가 그만두면서 그냥 문 닫은 것 아니었어?”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기억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노동상담소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인생의 획을 긋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었지만 안순애씨와 같은 노동자에게는 지나온 삶의 숱한 흔적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순애씨에게 “그날 삼익가구 정문 앞에서 유일하게 잡혀간 사람도 바로 나였잖아”라고 말하자, 안순애씨는 “그러게, 아무 한 것도 없는 사람이 그날 거기는 뭐 하러 왔다가 잡혀가?”라고 놀리듯 말했다. 안순애씨가 굳이 나를 “아무 한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개박살’이 날 때까지 겪었던 숱한 사연들에 비하면 내가 한 역할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하찮은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은 언제나 늘 그렇다. 온 나라가 장기 추석연휴를 앞두고 들떠 있던 지난 26일 아침, 한 택시노동자가 분신했다. 언론은 “노동조합을 설립한 뒤 해고당했고 2년여 기간의 재판을 거쳐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복직했다”고 간단히 표현했지만, 그 짧은 문장의 단어 하나하나마다 소설책 몇권 분량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사연이 스며 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기까지 동료들과 숱한 밤을 지새우며 만났을 테고, 해고당하기까지 온갖 위협과 폭언에 시달렸을 테고, “송사에 휘말리면 집안 망한다”는 세상에서 2년여 재판 과정이란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고통이었을 테고, 이미 ‘원수지간’이 된 회사에 다시 들어가 “폐차 직전 차량을 배차받아” 운행하면서 “법대로 완전월급제를 실시하라”고 요구하는 활동 또한 이 세상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하기 어려운 난관이었을 것이다.

‘열개의 우물’에서 안순애씨는 “나는 역사를 바꾸거나 혁명을 하려고 싸운 것이 아니었어요. 노동자였을 때나 농민이었을 때나 더는 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으니까, 앞으로 한발 내딛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뿐입니다. 다른 데로 도망갈 곳이 없었으니까 싸울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라고 몇번이나 강조했다. ‘대학’이라는 곳으로 도망간 한때의 ‘동지’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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