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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관치금융 주장에 동의 안 해” 아쉬웠던 노 대통령 발언

등록 2023-10-30 16:58수정 2023-10-30 18:53

[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38화 금융 문제

금융통화위

증권업협회장 몫 금통위원 빼고
한은 부총재 추가해 독립성 강화

화폐개혁
한은 ‘1000원→1원’ 강하게 추진
물가인상·지하경제 우려로 불발

금융감독기구
민간 금융감독원-정부기관 금감위
‘2층 조직’에 관치금융·감독 잔재
감독기구 민간기구화 노력했으나
노 대통령, 현상유지 방안 선택해

2003년 10월9일 오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 회의실에서 박승(서있는 이) 한국은행 총재 겸 금통위원장이 위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woo@hani.co.kr
2003년 10월9일 오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 회의실에서 박승(서있는 이) 한국은행 총재 겸 금통위원장이 위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woo@hani.co.kr

참여정부 시기에 떠오른 금융 문제가 많았지만 그 중 금통위 구성, 화폐개혁, 그리고 금융감독기구 문제를 보자.

1. 금융통화위 구성

2003년 4월23일(수) 오전 9시 경제분야 수석회의에서 권오규 정책수석, 김태유 과학기술보좌관, 조윤제 경제보좌관과 함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구성 문제를 토론했다. 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는 위원장인 한국은행 총재와 재정경제부·한국은행·금융감독위원회·대한상공회의소·은행연합회·증권업협회 추천 위원 6명으로 구성되는데, 실질적으로는 재경부의 영향력이 커 한국은행의 발언권이 너무 약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당시 중앙은행 독립성 국제비교에서 한국은 비교 대상 32개국 중 29위로 초라한 처지였다.

7월14일(월) 오전 11시 과천 재경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제1회 경제·민생 점검회의에서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을 토의했다. 회의 뒤 김진표 부총리와 박승 총재, 권오규 수석, 조윤제 보좌관과 함께 부총리실에서 금통위 구성 문제를 토론했다. 다섯명은 7월18일(금) 오후 2:30 다시 한은법 문제를 토의했다.(서별관). 증권업협회장 추천을 뻬고 한은 부총재를 넣는 것으로 결론났다. 한은 총재의 입지를 강화하는 안이었는데, 청와대 참모 3명은 중앙은행 독립성 강화라는 관점에서 한국은행 입장을 지지하는 편에 섰다.

2004년 9월17일 오전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박승 한국은행 총재(오른쪽)가 시중은행장, 임원들과 화폐개혁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9월17일 오전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박승 한국은행 총재(오른쪽)가 시중은행장, 임원들과 화폐개혁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 화폐개혁

2003년 5월19일(월) 12시 박승 한은 총재와 오찬을 같이 했다. 박 총재는 화폐 액면단위를 1천 대 1로 디노미네이션하는 방안을 한국은행이 3년간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1천원을 1원으로 표기하는 안이다. 그리고 고액권을 발행하면서 지폐 크기는 축소하고 위폐 방지장치를 넣는 방안을 설명했다. 그렇게 하면 한국 원화가 미국 달러와 대등한 단위가 돼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일상 거래의 계산이 간편해지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일리 있지만 화폐 액면가치가 1천배 올라가면 뇌물수수가 용이해지는 부작용이 걱정이다. 그리고 5·16 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위 유원식 대령 주도로 비밀리에 추진했던 10 대 1 화폐개혁이 실패한 전례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9월26일(금) 오전 10시 금융 장관회의(서별관)에서 부총리, 금감위원장, 예산처 장관, 한은 총재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과 화폐개혁 문제를 토론했다. 1천 대 1 디노미네이션은 값이 싼 물건 가격상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유럽에서 유로화를 도입했을 때 각국이 약간씩 인플레 효과를 경험했다. 김진표 부총리는 지폐 규격 축소나 고액권 발행은 좋지만 디노미네이션은 신중해야 하고 추후 남북한 화폐통합 시 고려할 일이라고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한국은행은 이 문제에 강한 집념을 갖고 있었다. 해가 바뀌어 2004년​ 9월8일(수) 오전 10시 한국은행 김수명 부총재보가 찾아왔다. 1천 대 1 화폐개혁과 고액권 발행, 위폐 방지 장치를 한꺼번에 하는 안을 설명하면서 기계 교체 등 약간의 경기부양과 부자들의 소비 촉진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당시 한은 출신인 여당 우제창 의원뿐 아니라 야당의 김효석, 남경필 의원도 이런 주장을 하고 있었는데, 정치권 주도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틀 뒤 박승 총재와 오찬을 같이 했는데, 박 총재 또한 화폐개혁+고액권+위폐방지 강화를 한꺼번에 진행해 비용을 절감하며 경기부양 효과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패 조장, 물가상승 우려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화폐개혁 문제는 한국은행이 열의를 갖고 추진했으나 주위 호응을 못 얻어 더는 추진되지 않았다.

2004년 8월16일 오전 서울 혜화동 경실련에서 열린 “공적 통합민간금융감독기구 개편 촉구를 위한 경제학자 100인 기자회견”에서 대표로 참석한 교수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의영 군산대 교수, 권영준 경희대 교수, 윤석헌 한림대 교수, 최용록 인하대 교수. 연합뉴스
2004년 8월16일 오전 서울 혜화동 경실련에서 열린 “공적 통합민간금융감독기구 개편 촉구를 위한 경제학자 100인 기자회견”에서 대표로 참석한 교수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의영 군산대 교수, 권영준 경희대 교수, 윤석헌 한림대 교수, 최용록 인하대 교수. 연합뉴스

3. 금융감독기구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은 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 위에 정부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현재는 금융위원회)가 군림하는 2층 조직으로 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학계 비판이 많았다. 2004년 5월27일(목) 9시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 윤석헌 교수(한림대·나중에 문재인 정부 금융감독원장), 최장봉 박사(금융연)가 내 사무실에 와서 금융감독기구 개편 문제를 토론했다. 윤석헌 교수는 금융감독기구를 민간기구로 통합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최장봉 박사는 몇년 전 금감원 부원장보로 근무했는데, 근무하는 동안 한번도 민간기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즉 정부기구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4년 7월26일(월) 오후 3시 정부혁신위원장이던 윤성식 교수(고려대)가 이튿날 있을 금감위, 금감원 기구 개편 문제를 의논하러 찾아왔다. 윤 교수는 한달 넘게 연구한 결과 금융감독기구는 민간조직으로 가는 게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몇달 동안 카드대란 건을 감사해온 감사원과 재경부, 청와대 모두 금감위를 현행 70명에서 2백명으로 키우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했다. 이튿날 대통령 주재로 이 문제를 논의한다는데, 나한테 참석하라는 연락이 없었다. 경제 관련 중요 회의에 나를 빼놓은 경우는 없었는데 매우 수상했다. 김병준 정책실장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잘 모르고 김영주 경제수석이 회의 준비 책임을 맡고 있다기에 나를 참석자로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2004년 7월27일(화) 오후 3시 대통령 집무실에서 금융감독기구 회의가 열렸다. 집무실 회의는 이례적이다. 게다가 원래 감사원 사무총장이 참석할 예정이었다가 전윤철 감사원장이 직접 참석했다. 예정에 없던 김우식 비서실장도 참석했다. 회의의 무게가 높아지고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문제 연구팀장인 국찬표 서강대 교수가 발제를 했다. 1안은 금감위 규모를 현행 70명 유지, 2안은 금감위 규모 확대, 참고 대안은 1998년 금감위 출발 때처럼 10여명으로 축소하는 안이었다. 윤성식 정부혁신위원장이 참고 대안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는데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

80분간의 난상토론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내가 발언했다.

“금감위와 금감원은 통합하는 게 맞고, 민간조직으로 가야 한다.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관치가 한국 금융을 망쳤다. 종금사, 카드사, 투신사 등 모든 금융 실패의 근본 원인은 관치금융이다. 둘째, 금융감독과 재경부의 역할 관계를 보면 재경부는 위기 때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관리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데 감독마저 관료가 맡으면 정신적 해이(moral hazard) 문제가 발생한다. 한 식구가 집행과 감독을 맡으면 봐주기 쉽다. 그래서 금융감독은 민간기구가 맡는 게 옳다. 그 방법으로는 참고 대안으로 가는 방법이 있고 금통위+한국은행 모델도 가능하다.”

하루 전날 허성관 행자부 장관(한국은행 출신)이 대통령에게 다른 안건을 보고하면서 금융감독을 한국은행에 맡길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내 발언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결론을 내리겠다. 관치금융, 모피아(Mofia)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랬다 치더라도 앞으로 달라지면 되지 않느냐. 금통위+한은 모델도 생각해봤는데 역시 1안으로 가는 게 옳겠다.”

결국 금감위가 현재대로 70명 규모로 감독 책임을 맡고, 법률 제정·개정권을 재경부에서 가져오는 것으로 결론 났다.

노 대통령의 결정은 대개 옳았지만 이 경우는 아쉬웠다. 회의 뒤 윤성식 위원장에게 전화해서 회의 결과를 어떻게 보는지 물어보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나를 위로했다. 하마터면 금감위가 2백명 규모로 확대될 뻔했는데 내가 강하게 발언해서 이 정도라도 막은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기구는 지금도 관료조직인 금융위가 민간조직인 금감원 위에 군림하는 옥상옥 조직이어서 문제가 많다. 게다가 금융위는 공무원 250명에다가 여러 금융기관 파견직까지 합치면 3백명 가까운 규모로 대폭 커졌다. 관료조직은 하는 일과 관계없이 자꾸 커진다고 하는 ‘파킨슨의 법칙’이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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