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전남 구례군 산동면 일대의 지리산 자락은 요즈음 온통 노란색으로 출렁인다. 산수유꽃이 만개한 산동면 지리산 온천관광단지 일대에서는 다음달 2일까지 산수유축제가 열리고 있다.
소설가 김훈은 수필집 <자전거여행>에서 산수유꽃을 이렇게 묘사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꽃을 이처럼 잘 그려낼 수가 없다. 일설에, 산수유는 지금부터 1000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구례로 시집온 며느리가 가져와서 처음으로 심었단다. 산동면이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각종 한약재로 쓰이는 산수유는 이 동네의 주요 소득원으로 ‘대학나무’로 불린다.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60%가 산동면에서 나온다.
그러나 산수유 노란 꽃에는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가 숨어 있다. 여순반란 사건 때 산동면의 부자였던 백씨 집안의 오남매 중 둘째딸인 백순례(애칭 부순)는 열아홉 나이에 부역 혐의로 희생됐다. 그의 희생은 집안의 대를 잇으려는 어머니 고순옥(1987년 사망)씨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백씨네 큰아들과 둘째아들은 이미 일제 징용과 여순사건으로 목숨을 잃었고, 셋째아들마저 쫓기자 순례를 대신 내놓았다. 그가 경찰에 끌려갈 때 구슬프게 부른 노래가 1960년대 대중가요로 나왔다가 금지된 ‘산동애가’(山東哀歌) 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한 채로
까마귀 우는 골에 병든 다리 절며절며
달비머리 풀어얹고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없이 스러졌네 …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없이 스러졌네 …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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