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시청에서 열린 서울시청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프리즘] 박다해
전국부 기자
‘눈 떠보니 후진국’이란다. 안타깝지만, 한국은 계속 ‘후진 나라’였다. 적어도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문제에선 말이다.
우춘희 작가의 책 ‘깻잎 투쟁기’는 한국의 고용주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방법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떼먹는지, 그리고 정부가 이런 노동환경을 어떻게 방관해왔는지 생생하게 기술한다. 우 작가가 정보공개청구를 해 받은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임금 체불을 신고한 노동자 수는 2016년 2만1482명에서 2020년 3만1998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체불 금액도 같은 기간 686억원에서 1287억원으로 늘었다. 임금 체불 신고가 어려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려하면 체불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왜 일을 시키고 제값을 주지 않을까. 우 작가가 인터뷰한 사업주의 말에서 그런 이유 중 하나를 엿볼 수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한달 최저 월급이 20만~25만원인데 여기에서는 일고여덟배 더 벌어가잖아.”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한국의 최저임금보다 덜 받아도 되고, 그마저도 감지덕지할 일이란 얘기다. 조립식 패널로 만든 가설물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살도록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본국보다 돈 몇푼 더 주는데 차별쯤은 감수하라는 태도다.
100명 규모로 연내 시범 도입해 서울시에서 활동하게 하겠다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논의 과정에도 이런 사고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재 (급여는) 월 200만원이지만, 월 100만원 정도 되면 정책 효과가 좋겠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10월16일, 국회 행정안전위 국정감사)며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 지급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노동부와 서울시가 선정한 시범사업 업체는 이들의 숙소를 고시원에 마련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나마 비닐하우스보단 나으니 박수라도 쳐야 할까.
이런 가운데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정책은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애초 정부가 인력 송출 대상국으로 고려했던 필리핀이 ‘가사와 육아를 한명이 모두 하는’ 안을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뒤늦게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른 나라로 급하게 눈을 돌리고 있다.
이미 예견됐던 문제다. 지난 7월 열린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필리핀 정부는 국외에 파견하는 가사관리사를 보호하고 강화하는 정책을 쓰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말하는) 질 높은 인력을 6개월 시범사업으로 파견하는 데 필리핀 정부와 협의가 돼 있는지 의문”(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란 지적이 나왔지만, 노동부는 이렇다 할 답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27일 내년도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 규모를 16만5천명까지 늘린다고 밝혔다. 임금 체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이들의 안정된 생활 기반은 어떻게 마련할지, 그 많은 사업장을 어떻게 관리·감독할지 등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음식점에 취업할 경우 현재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도 고용허가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정부는 내년도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곳은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상담부터 한국어 교육까지 맡아왔다. 지난해 이용 건수만 53만건에 이른다. 정부는 노동부 지방고용노동(지)청과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역할을 나눠 맡게 된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회의적이다. 주말 상담 등에서 공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시 ‘깻잎 투쟁기’ 속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다. 한국 고용주가 못사는 나라에서 왔단 이유로 최저임금을 주지 않겠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캄보디아 출신 여성 노동자는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그럼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세금도 절반만 낼게요.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음식값도, 버스값도 절반만 낼게요. 그러면 될까요?”
노동부와 서울시가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할지 자못 궁금하다.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