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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국 지도자들은 왜 점점 솔직해질까 [특파원 칼럼]

등록 2023-11-30 17:17수정 2023-12-01 02:38

지난 10월1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에 대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10월1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에 대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제국의 특성 중 하나는 여유다. 제국에 위엄과 관용은 동전의 양면이다. 중국 왕조들은 조공무역에서 종속국들이 바치는 것보다 더 많이 베풀기도 했다. 냉전 때 소련은 자국보다 잘사는 동유럽 국가들을 무상 지원했다. 실제로는 빼먹는 게 더 많더라도 너그럽고 인심 쓰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게 제국들의 치세 방식 중 하나였다.

요즘 미국에서 그게 사라져 간다. 급하면 직설이 튀어나오듯 위선을 걷어낸 말들도 많아진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0월19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은 미국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제임스 오브라이언 국무부 차관보는 11월8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무기 재고를 우크라이나에 넘기면 미국 무기고는 새롭고 효율성이 더 높은 무기로 채울 수 있고, 우크라이나 지원액은 거의 모두가 미국에 대한 투자라고 했다. 백악관은 무기공장이 배치된 주별로 예산이 얼마나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지도까지 만들었다. 세금낭비론을 펴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바보야! 그 돈 결국 당신들 지역구로 가잖아’라고 반박하는 셈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자유 수호를 위한 ‘숭고한’ 지원 이면에 냉정한 계산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로비업체들이 너도나도 우크라이나 정부를 위해 무료 로비를 해주겠다고 나선 기묘한 상황도 퍼주기라는 주장이 근시안적임을 보여준다. 돈은 결국 미국 군수업체들에 가니 로비스트들은 거기서 자기 몫을 챙기면 된다. 군산복합체의 영업비밀을 털어놓는 듯한 이례적 설명은 미국이 이제는 안팎에 숨겨왔던 진실을 드러내야 하는 처지가 됐음을 보여준다. 그러지 않고서는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

미국이 앞장서서 구축해온 자유무역 질서에 스스로 타격을 입히는 것도 이런 태도 전환의 한 모습이다. ‘공급망 안정’은 결국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겠다는 말이다. 미국 입장에선 전교 1등 학생이 친구한테 노트를 빌려주고 문제 푸는 방법도 가르쳐줬더니 자기 자리를 넘볼 정도로 공부를 잘하게 된 것과 같은 꼴이다. 그래서 아량과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민간인 대량 살해에 관해서도 비정할 정도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10월25일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 중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많이 죽고 있다’는 지적에 “난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있다고 믿지만, 그게 전쟁을 벌이는 대가다”라고 했다. 전쟁을 일으킨 쪽에 속하면 죄가 없는 이들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미국의 영향력 감퇴와 중국의 부상은 미국을 더 초조하고 솔직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 등 동맹에도 뭐라도 더 보태라는 독촉이 이어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 분위기를 솜씨 좋게 이용해 대통령이 됐다. 그만큼 거짓말 잘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매우 솔직하다. 평생을 욕망 앞에서 솔직했고 충실했던 그는 대중의 솔직한 불만, 위기감, 콤플렉스를 ‘아메리카 퍼스트’ 구호로 묶어 세우는 데 성공했다. 솔직함이 그의 성공 비결이라면 지나친 걸까?

국가든 개인이든 여유와 체면을 버리면 강퍅하고 무서워진다. 미국은 바이든이 재선하면 완만한 속도로, 트럼프가 재선하면 더 빠른 속도로 그렇게 될 것 같다.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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