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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범 숨기고 꼼수 부추기는 새마을운동식 물가 관리 [아침햇발]

등록 2023-12-05 16:50수정 2023-12-06 02:41

5일 오후 서울 시내 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최근 물가변동에는 농산물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서울 시내 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최근 물가변동에는 농산물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남구 | 논설위원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보통 사람의 처지에서 큰 폭의 물가 상승은 일자리를 잃는 것 다음으로 고통스럽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 고통이 끝날까? 그렇지도 않다. 한번 올라버린 물가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승 속도만 완만해지는 것이라면 ‘다행’한 일일 뿐 ‘고통의 해소’는 못 되기 때문이다. 소득 증가로 물가 상승이 상쇄되지 않는 한, 고통은 쌓여 있다.

물가고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힌다. 5일 통계청 발표를 보면, 1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3% 올랐다. 이는 11월15일을 기점으로 최근 1년간 3.3% 올랐다는 뜻이다. 10월 조사에서는 최근 1년간 3.8% 올랐었는데 한달 새 상승률이 꽤 내려왔다. 11월 물가가 전달보다 0.6%나 떨어진 까닭이다. 한달 하락 폭으론 꽤 크다.

정부가 애쓴 덕일까? 정부가 이래저래 애쓰는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2.3%까지 낮아졌다가 10월에 3.8%로 높아지자 정부는 11월2일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사흘 뒤 농림축산식품부가 라면과 빵, 우유, 과자, 커피, 설탕, 아이스크림 등 7개 품목의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전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올리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꼼수인상(슈링크플레이션)을 “중요한 문제로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며 실태조사를 하고, 신고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겨냥한 것은 가공식품이었다. 이번 11월 조사에서 가공식품 물가는 한달 전에 견줘 어땠나? 0.6%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0.6% 떨어지는 동안 정반대로 0.6%나 오르는 움직임을 보였다. 10월에 전달보다 0.8% 오른 데 이어, 큰 폭으로 올랐다. 정부의 요란한 움직임에 비해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사실 가공식품은 7월에서 10월 사이 물가를 끌어올린 주범이 아니었다. 석달 새 소비자물가는 1.95% 올랐는데 가공식품 73개 품목의 물가지수는 같은 기간 1.0% 오르는 데 그쳤다. 가공식품 73개 품목의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는 1000 가운데 86.8에 그친다. 그래서 몇몇 품목이 크게 올라도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7월에서 10월 사이 물가를 끌어올린 주범은 쌀, 배추를 비롯한 농축수산물(8.12%)과 휘발유, 경유 등의 석유류(13.99%), 그리고 전기료(11.75%)와 시내버스료(10.78%) 등 공공요금이었다. 농산물은 작황이 나빠서였고, 석유류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서 비롯한 국제 유가 상승 탓이었다. 이 둘을 제외하면 그동안 억제해두었던 전기료와 시내버스료를 올린 것이 물가를 끌어올렸다. 석달간 물가상승률 1.95% 가운데, 농축수산물이 0.7%포인트, 석유류가 0.58%포인트를 끌어올렸고, 전기료가 0.21%포인트, 시내버스료가 0.07%포인트 끌어올렸다. 이를 보면, 가공식품의 슈링크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요란한 움직임은 공공요금 인상이 초래한 물가 상승을 호도하려는 시끄러운 굿판이 아니었나 의심하게 된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크게 오를 때, 기업이 원가 상승분 이상으로 상품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이 흔히 나온다. 그런데 기업은 늘 가격 인상이 판매량을 줄일 것까지 고려해, 최고 이윤을 낼 수 있는 가격을 책정한다. 정부가 가려내야 할 것은 독점기업의 횡포나 기업들의 가격 담합이다. 기업들을 불러 모아 가격을 내리라고 윽박지르고, 뭔가 행동을 요구하면 꼼수가 는다. 그것이 오히려 슈링크플레이션을 조장한다. 11월 물가 하락은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 하락 덕인데, 가공식품 가격은 0.6%나 올랐다. 당국의 타깃이 되기 전에 얼른 가격을 올려버리자는 움직임이 더 확산된 탓일 가능성도 있다. 새마을운동 때의 물가 관리가 아니라 세련된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가계 처지에서 보면 물가 상승이 싫지만 소득이 물가만큼 오르지 않는 것이 진짜 고통의 뿌리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10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9월까지 상용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396만1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5%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3.7%)을 크게 밑돈다. 정말 민생을 걱정한다면, 정부가 더 관심을 둬야 할 부분이 여기다. 점차 고개를 드는 소비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그러해야 한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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