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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외원조 1조8천억 ‘통큰 예산’, 부산 엑스포가 남긴 수수께끼

등록 2023-12-07 09:00수정 2023-12-08 13:5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브롱냐르궁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경일 리셉션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브롱냐르궁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경일 리셉션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박복영│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정부는 내년 전체 예산 증가율을 2.8%로 묶었다.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매우 낮은 증가율이다. 그런데 외교통일 분야 예산은 무려 19% 증가했다. 12개 분야 중 가장 많이 늘었고, 17%가량 줄어든 연구개발(R&D) 예산과 대비된다. 긴축 기조 속에서 외교통일 분야가 왜 이렇게 늘었을까? 통일 분야 예산이 증가했을 리는 없으니 답은 외교에 있다. 외교 분야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외원조(ODA)가 전년 대비 무려 45%, 금액으로는 1조8천억원가량 늘었다. 예산 편성에서 긴축 기조를 강조한 윤석열 정부가 왜 원조 예산은 이렇듯 사상 유례없이 큰 폭으로 늘렸을까?

일반적으로 보수 정부는 원조에 인색하다. 실제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어디에도 원조 규모 증액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래서 지난 6월 국무총리실이 내년 원조 규모를 대폭 증액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이 분야 전문가들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수수께끼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후일담을 읽으며 풀렸다. 오일머니를 뿌리며 엑스포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개발도상국들에 원조 제공 약속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도 원조 예산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대외원조 중에서도 인도적 지원 예산의 대폭 증가가 이런 심증을 뒷받침한다. 일반적으로 원조가 예산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2~3년 전부터 준비해 개도국 정부와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인도적 지원 예산은 이런 준비 없이 그리고 특정 사업에 구속받지 않고 정부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국무총리실 발표에 따르면, 이 예산이 올해 4천억원에서 내년 1조1천억원으로 증가한다. 증가액은 7천억원, 증가율은 무려 188%다. 보통 전체 원조의 10%에 불과한 인도적 지원이 이렇게 급속하게 늘다니,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우리 원조 규모가 한국의 경제 규모나 국제사회 위상에 비춰 볼 때 작은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계속 늘려가면서 개도국의 빈곤 탈출과 발전에 기여하고, 또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국격과 비가시적 힘, 즉 소프트파워도 높여야 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엑스포 같은 국제행사 유치를 위해 원조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경쟁 상대가 사우디아라비아라면 자금 지원으로 표를 얻겠다는 전략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엄청난 규모의 국부펀드를 이용해 해외 프로스포츠 구단 인수와 월드컵 등 국제행사 유치에 나서 세계를 휘젓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오일머니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 자금을 국가 지도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왕정 국가도 아니다.

정부는 늘 자유와 인권, 인도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외교를 강조한다. 그런데 국제행사 유치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원조 자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다른 원조 공여국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어느 나라나 개도국에 원조할 때 자신들의 이익도 고려한다. 하지만 그 이익은 국제행사 유치나 자기 나라 상품 수출과 같은 직접적 이익이 아니다. 그런 이익과 연계시키면, 원조를 하고도 소프트파워가 오르기는커녕 떨어질 것이다. 장기적 지원 계획과 준비 없는 일회성 지원은 개도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외원조 정책에는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 규모가 작다는 점은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라 꾸준히 늘려가면 된다.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우선 대외원조의 전략적 목표가 없고 이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정부 부처도 없다. 차관으로 제공되는 자금에는 우리나라 물품 구매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꼬리표가 붙어, 개도국들이 오히려 받기를 꺼린다. 반세기 전 원조를 수출 지원 수단으로 이용하던 유산을 세계 10위 무역 대국이 된 지금도 버리지 못해 국제적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정부가 이번 기회에 이런 문제들을 고쳐나가기를 기대한다. 대외원조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원조 정책이 정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이슈이기에, 의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여야 모두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한국은 이미 국제외교의 변방에 머무를 수 없는, 그리고 머물러서는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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