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민생은 고달팠다. 경제 위기 때를 제외하곤 한번도 2%를 밑돈 적이 없는 경제성장률이 1.4%(정부 전망)로 떨어졌다. 경기가 나쁘면 약자들이 더 힘든 법이다. 물가는 3.6%나 올랐는데, 1~10월 사이 상용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체의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 총액은 2.3% 증가(300인 이상 사업체는 2.7%)에 그쳤다. 실질 소득이 감소했다. 정부는 물가 상승의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며, 임금 인상을 강력 억제했다.
팽창한 가계부채는 금리가 오르면서 가계에 이자 부담을 가중시켰다. 가처분 소득을 줄였다. 2022년 말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촉발한 ‘레고랜드 사태’가 시장금리를 크게 끌어올렸는데, 특히 저신용 채무자에게 적용하는 금리가 폭등했다. 저축은행 연체율이 상승하고, 카드빚 돌려막기를 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첫날 국립현충원을 찾아 방명록에 “국민만 바라보며 민생경제에 매진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21차례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었으니,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성과라 내세울 만한 게 없을 뿐이다. 지난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민생’ 강조가 부쩍 잦아졌다. 그러나 기대는 당분간 접어야 할 것 같다. 정부·여당이 내놓는 정책들이 민생 회복을 위한 것도 아니고, 민생에 도움도 못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은 뒤 윤석열 정부가 오로지 매달린 것은 감세 정책이었다. 대기업에 혜택이 쏠리는 파격적 법인세 감세, 고액 부동산 보유자를 위한 보유세와 양도세 감세, 기업 상속에 대한 감세가 맨 앞에 있다. 이런 대규모 감세에다 경기 후퇴가 겹쳐 지난해 세수는 계획보다 60조원 가까이 부족했다. 그래서 재정정책은 사람이 술에 취해 뭘 했는지 하나도 기억 못 하는 ‘블랙아웃’ 같은 상태에 빠져들었다. 올해 예산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삭발하듯 줄이고, 역대 최저인 2.8% 증가로 막았다. 재정의 경기 대응을 포기한 것을 넘어, 곳곳에서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민생고를 키울 게 뻔하다.
총선을 앞두고 ‘민생’을 강조하는 정부 여당은 정책의 타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부동산 보유자와 자영업자·소상공인, 주식투자자에 집중하려는 것 같다. 김포시 서울 편입론으로 개시한 ‘메가시티 벨트’ 구상은 서울 주변 도시 부동산 가치를 올려주겠다는 사탕발림이다. 나라 경제를 생각하는 정치세력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코로나 저금리 때 집값이 폭등해 부동산 시장은 지금 그 후유증으로 위태롭다. 정부는 지난해 정책금융을 대거 풀고,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내세워 집값을 떠받쳤다. 하지만 덮어두었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이 이제 터져나오고 있다. 거품 후유증 관리에 매달려야 하는 시기에, ‘부동산으로 한번 더 먹어보자’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걸 정상적 사고라 보기는 어렵다.
정부는 돈을 많이 번 은행들의 팔목을 비틀어 자영업자들에게 2조원 규모의 이자를 환급해주게 했다. 취약 차주의 고금리 부담 완화가 목적인데, 왜 자영업자만 대상인가? 은행들의 이자 환급은 은행 주주들에게 그만큼 손해를 강요한 것이기도 하다. ‘상생금융’이란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지만, 정치적 목적의 주먹구구에 불과했다. 올해는 소상공인 126만명에게 전기료 20만원씩을 감면해준다고 한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가 심각한데, 왜 자영업자만 지원해주는지 이해할 만한 설명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욕한 ‘퍼주기 예산’ 아닌가?
정부는 주식시장의 개인투자자들을 겨냥한 정책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공매도를 전격 금지했고, 양도세 과세 대상 대주주의 범위를 ‘10억원 이상 보유’에서 ‘50억원 이상’으로 높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행을 2년 미뤄놓은 금융투자소득세도 폐지하겠다고 한다. 세금이 줄어드는 거액 투자자들에게는 횡재가 되겠지만, 소액 투자자들에게는 득 될 게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정책이 주가를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반면 후진적 제도를 유지시켜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연장할 것이다.
도박, 내기 따위에서 많이 딴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떼주는 돈을 개평이라고 한다. 어느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먹통이 돼버린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에 지금 남은 것은 ‘개평 떼주기’뿐이다. 그러니 ‘개평 경제’라 불러야겠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