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무릎꿇고 바닥에 엎드리는 큰절은 전통적인 예의범절의 하나다. 유교 경전의 하나인 ‘주례’에는 머리를 오랫동안 바닥에 붙이고 있는 계수, 바닥에 붙였다가 바로 떼는 돈수 등 아홉 가지 절하는 방법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모두 상대에 대한 경의와 숭배 나아가 복종의 의미를 담고 있다. 유교적인 전통사회를 벗어남에 따라 일상생활에서는 큰절이 많이 사라졌다.
정치인은 아무데서나 넙죽넙죽 큰절을 잘한다. 7·11 한나라당 전당대회장에서 이방호 의원 등 일부 최고위원 후보가 연설에 앞서 대의원들에게 큰절을 했다. 유세 때 경로당 같은 곳은 큰절의 정치 전시장이다. ‘정치인은 머슴, 유권자는 주인’이라는 말에서처럼 현대적 민주주의 관념과 옛 전통사상이 조화를 이뤄 유권자에게 엎드리는 게 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큰절은 때로 큰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역풍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조계사에서 108배, 추미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광주에서 삼보일배를 했다. 또 노인 폄하 발언과 관련해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범어사에서 9배를 했다. 모두 나름의 목적을 이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면 큰절도 때로는 낭패가 되기도 한다. 386 정치인인 허인회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2000년 청와대 한 행사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큰절을 했다가 봉건적 행태라는 비판을 받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다.
수해 골프 파문 등과 관련해 이해봉 한나라당 윤리위원장과 주호영 의원이 홍문종 전 의원 등에 대한 징계를 발표하면서 큰절을 했다. 당사자들을 대신한 사죄의 뜻일 게다. 텔레비전을 통해 큰절을 받은 국민의 마음이 풀렸을까. 글쎄? 큰절 정치 자체를 제발 그만 봤으면 하는 게 국민의 바람이지 싶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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