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 〈시카고〉(주연 리처드 기어)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변호사는 거의 파렴치범 수준이다. 현란한 언론 플레이로 살인범을 억울한 죄인으로 둔갑시키는 변호사의 관심사는 결국 ‘돈’이다. 얼마 전 개봉한 한국영화 〈공공의 적 2〉는 영웅적인 검사가 주연이다. 여기에 잠깐 등장하는 검사 출신 변호사 역시 로비로 사건을 풀어내려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시카고〉 주인공에 견주면 양반이다.
영화엔 문외한이지만 미국영화에서 변호사를 형편없이 깎아내리는 경우는 종종 봤어도, 한국영화에선 그런 묘사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엔 변호사에 대한 그 사회의 인식 차이도 깔려 있을 터이다.
기자 초년 시절, 법조계를 출입하면서 변호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 중 상당수는 세칭 ‘인권 변호사’였다. 그 무렵 ‘법’은 이름뿐이었다.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무죄 취지도 아니고 단지 검찰 공소장의 ‘내란목적 살인’이 아니라 ‘단순 살인’이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대법원 판사들을 보안사로 끌고가 능욕했던 신군부가 검찰은 물론 법원까지 틀어쥐고 있던 시절이었다. 중요 시국사건을 앞두고 법원장이 법원 출입 안기부 ‘직원’과 단 둘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기자를 만나 당황해하던 표정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뇌리에 생생하다.
‘인권 변호사’란 호칭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멀리 일제 시대에도 독립 운동가들의 변론에 앞장선 김병로 변호사가 있었다. 6·3 사태 당시 대한변협 회장으로서 “계엄령은 위헌”이란 건의서를 발표했다 구속된 이병린 변호사, 민청학련 사건 법정에서 연행·구속된 강신옥 변호사, 사형수인 간첩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는 황당한 이유로 구속된 한승헌 변호사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 이래 30여년 군사정권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달걀로 바위를 쳐 결국 바위를 깨뜨리는 데 앞장선 훌륭한 변호사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홍성우 황인철 조준희 조영래 등등.
총칼 앞에 법이 실종된 상황에서도 이들은 한편으로 법전을 들춰 논리로 재판부를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에 호소하기도 했다. 지금도 선배들의 뒤를 잇는 젊은 변호사들이 박봉과 적은 수임료 속에서도 ‘인권’이란 화두에 매달리고 있다.
아마도 이들이 있었기에,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변호사란 직업 앞에 ‘인권’이란 말을 붙이는 일이 자연스러울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공공의 적 2〉가 묘사한 강철중 검사보다 훨씬 영웅적으로 활약한 변호사들이 많았는데, 아직 이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것은 과문한 탓인가.
어쨌거나 1980~90년대 한때 ‘인권 변호사’와 ‘물권 변호사’란 말이 한 묶음으로 유행했다. 인권을 좇는 게 인권 변호사라면 돈을 좇는 게 물권 변호사다. 하지만 인권이 개선되고 돈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인권 변호사란 이름도 낯설어졌다.
이런 분위기 탓일까, 얼마 전 신임 대한변협 회장은 대법원의 사법개혁 프로그램을 ‘개악’이라고 폄하하면서 “앞으로 변호사의 권익을 수호하겠다”고 공약하고 나섰다. 법학대학원(로스쿨) 인가에도 변협이 관여하겠다면서 그 정원이 1200명을 넘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도 피력했다. 변호사 수가 늘면서 사무실 유지조차 힘든 변호사가 생긴 것도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터여서 그의 말을 냉소로 넘겨버리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요즘 ‘밥먹기 힘든다’며 변호사 의무 가운데 청렴의무는 빼달라고 전화해 오는 후배 변호사들도 많다”는 등 취임 일성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인권’의 그림자는 찾기 어렵다. 세간에서는 변협이 새 집행부 출범 이후 인권단체에서 이익단체로 노골적인 변신을 시작했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은 여전히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돼 있지만, 자칫 국민들은 이제 변호사에게서 ‘인권’ 대신 ‘장사꾼’의 모습만 떠올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되면 곧 한국판 〈시카고〉가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김이택 사회부장 rikim@hani.co.kr
하지만 “요즘 ‘밥먹기 힘든다’며 변호사 의무 가운데 청렴의무는 빼달라고 전화해 오는 후배 변호사들도 많다”는 등 취임 일성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인권’의 그림자는 찾기 어렵다. 세간에서는 변협이 새 집행부 출범 이후 인권단체에서 이익단체로 노골적인 변신을 시작했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은 여전히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돼 있지만, 자칫 국민들은 이제 변호사에게서 ‘인권’ 대신 ‘장사꾼’의 모습만 떠올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렇게 되면 곧 한국판 〈시카고〉가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김이택 사회부장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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