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우리 작가들은 통속성을 띨 수밖에 없는 신문 연재소설 쓰는 것을 첨부터 그다지 탐탁잖게 여겼던 것 같다. 개화기의 소설가 이무영은 “신문소설을 쓰게 된 것은 생계의 길이 없어 시작한 것”이라며 “이것은 사도요, 성격적인 파산”이라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초기 연재소설은 우리나라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최초의 장편소설인 이광수의 ‘무정’(1917년)을 비롯해 홍명희의 ‘임꺽정전’(1928), 염상섭 ‘삼대’(1931), 심훈 ‘상록수’(1935) 등이 모두 연재소설이다.
1954년 〈서울신문〉에 실렸던 ‘자유부인’(정비석)은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다. “입술을 고요히 스치고”, “감색 스커트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은미의 하얀 종아리”에 “별안간 가슴이 설레었다”는 정도의 표현에도 여론이 들끓었다. 대학교수 부인의 ‘단순한’ 춤바람뿐이었는데도 성 윤리 논쟁이 일었다.
2001년부터 〈문화일보〉에 연재되는 이원호의 ‘강안 남자’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정감사에 이어 대정부 질문에서도 이 소설의 음란성을 문제삼았다. 청와대 일부 비서관실에서는 이를 이유로 아예 신문을 끊었다. 이를 두고 ‘신종 언론탄압’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문제가 된 이후 잠잠하지만, 그동안 ‘강안 남자’의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는 1주일에 두서너번꼴로 나왔다. 음란물로 처벌을 받았던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와 장정일씨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문화일보는 ‘청소년 정서 해치는 매체들’(97년 7월), ‘갈수록 야해지는 인터넷 성인방송’(2001년 1월)이라는 사설에서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음란물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래놓고 “소설은 독자와 작가가 판단할 몫”이라며 ‘강안 남자’를 싸고돈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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