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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칼럼] 이명박은 구세주가 아니다

등록 2007-01-02 17:02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칼럼
신년하례는 ‘옛날 정치인’들의 마지막 영역이다. 올해도 상도동과 동교동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정했다. 한때 ‘황태자’라고 불렸던 김현철씨도 웃으며 손님들을 맞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몸이 불편해 부축을 받았다. 하지만 마이크를 들이대자 벼락을 치듯이 ‘강의’를 쏟아냈다. 듣는 이들을 위해 마무리로 ‘요점 정리’까지 해 주었다. 퇴임한 뒤 꽤 시간이 흐른 탓일까? 보기에 흐뭇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화려하게 올라갔다가 초라하게 내려왔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 같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유권자들은 ‘한 표 찍고 5년 동안 욕하기’를 되풀이하고 있다.

어째서 그럴까? 제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새해 신문기사 제목을 살펴 보았다.

‘국가 지도자를 새로 뽑는 해’ ‘깨어 있는 국민이라야 산다-이념 과잉과 무능의 혀끝정치 몰아내야’ ‘2007 대선의 해 밝았다’ ‘차기 대통령에게 바란다’ ‘국민은 이런 대통령 원한다’ ‘선택 2007’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이 새해를 맞아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했다. 선거는 12월인데, 올 한 해는 온통 선거밖에 없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8년 2월까지가 임기다. 그가 잘못하면 나라가 결딴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어쩌면 우리는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아닐까? 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5년마다 역성혁명을 시도하는 봉건시대의 백성들은 아닐까? 노 대통령을 미워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한 번 되돌아 보자.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잘 생각해 보자. 혹시 우리의 수준이 바로 노 대통령의 수준은 아닐까?

‘87년 체제’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는 내용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민을 거듭한 학자들의 진단이다. 대통령과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연말 아데나워재단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일이 있다. 아데나워재단은 독일 기민련을 지원하는 정당재단이다. 재단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민주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시민교육이었다. 나치의 출현을 막지 못한 반성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부러웠다.

하긴 그렇다.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진 것 같지만, 결코 공짜가 아니다. 참여, 연대, 성찰, 행동을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는 동네를 위해 일하는 지방의원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의 공약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정당 가입은 고사하고, 정치 후원금을 내는 사람도 별로 없다. 시민단체에 회원으로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냥 대통령 선거 때 ‘한 표’ 찍어 주고, 민주시민의 의무를 다했다고 우긴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 대통령은 이명박이다. 그가 잘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왕’을,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왕도 구세주도 아니다. 혼자 ‘통치’하기에 세상은 매우 복잡하다. 우리가 생각을 바꿔 먹지 않는 한 ‘이명박 대통령’도 반드시 실패한다.

물론 대통령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 한 사람에게 국가의 운명을 몽땅 맡기고 뒤에서 욕만 해댄다면 그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새해를 맞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택’이 아니라, ‘각성’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죽으면 경제도 죽고 나라도 죽는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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