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어제의 양심수와 오늘의 양심수

등록 2007-02-13 17:14수정 2018-05-11 15:55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지난 9일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을 맞아 특별 사면·복권 대상자를 발표했다. 그 중에는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권노갑·박지원씨 등 경제인과 정치인 등 총 434명이 포함되었는데, 삼성 일반노조의 김성환 위원장 등 양심수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참여정부는 구속 노동자와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 등 1천여 명의 양심수를 사면하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요청을 간단히 무시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특히 국제앰네스티가 양심수로 선정한 김 위원장을 사면하라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는데 무위로 돌아갔다. 김 위원장은 2003년 삼성 에스디아이(SDI) - 죽은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노조 활동가들의 위치를 추적한 일로 유명한 - 노동자들의 분신방화 사건 관련으로 3년 실형에 4년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집행유예 기간인 2005년에 다시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를 작성한 것이 명예훼손죄에 걸려 5개월 실형을 받아 먼저 받은 실형기간까지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왜 나는 정부의 사면·복권 대상자 발표를 보고 한명숙 국무총리를 떠올렸을까? 그에게 차마 민주공화국의 총리인지 삼성제국의 마름인지 묻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양심수가 무엇인지, 국제앰네스티가 선정한 양심수가 무엇인지 다른 국무위원들은 몰라도 한 총리만큼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어서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대통령 권좌만 남고 노무현이 사라졌듯이, ○○○ 장관에게서 ○○○은 사라지고 장관으로만 남는 참여정부의 블랙홀 현상에 한명숙 총리는 적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가 아직 남아서다. 그래서 경제정의를 제멋대로 짓밟은 주역들과 혐오스런 정치의 장본인들은 사면·복권하면서 양심수를 제외한 참여정부의 염치에 관해 한줌의 소회라도 토로할 분이 한 총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50일째를 맞은 한국고속철도(KTX) 여승무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 관철과 비정규직 확산, 저임금, 중간착취, 그리고 양성평등과 일터 민주주의, 공기업의 사회 공공성 문제들이 중첩된 이 사안에 대한 한 총리의 견해를 듣고 싶은 것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를 통하여 오늘 권력의 중심에 오른 과거 양심수들의 양심을 느끼고 싶은 작은 소망 때문이다. 오늘도 신문지면과 텔레비전 화면은 고통을 겪는 민중들의 모습으로 넘친다. 그런 현장에 오늘 권좌에 오른 사람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해공원’으로 상징되는 수구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으로 그 양심의 알리바이는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일까, 오늘 민중이 겪는 고통의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관련 사안에 대해 속내를 밝히는 데 무척 인색한 것이다. 한 총리의 경우도 결국 그가 앉은 자리가 그것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일까? 감옥에 갇혀 보이지 않는 양심수의 경우는 두말 할 필요도 없지만, 가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로 오늘 단식농성을 벌이는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성난 얼굴의 차가운 시선보다 더 무자비한 것은 환하게 웃는 얼굴의 무관심이다.

오늘 양심에 관해 말하는 것이 어줍잖은 것은 양심수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그들을 기억해내고 그들과 연대해야 하는 것은 오늘 양심수들이 이른바 민주화된 시대라는 이유로 과거의 양심수들에게서조차 잊혀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 양심에 보편성이 있다면, 그 양심은 분명 오늘 양심수들의 존재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오늘의 나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것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것을 요구할 것이다.

기획위원 hongs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위기의 삼성에서 바뀌지 않은 것 [한겨레 프리즘] 1.

위기의 삼성에서 바뀌지 않은 것 [한겨레 프리즘]

정의가 무너진 곳에서는 싸우는 것이 정의다 2.

정의가 무너진 곳에서는 싸우는 것이 정의다

[사설] 계속 쏟아지는 윤-김 의혹, 끝이 어디인가 3.

[사설] 계속 쏟아지는 윤-김 의혹, 끝이 어디인가

‘트럼프 쇼크’ 한국경제, 정부는 어디에? [11월13일 뉴스뷰리핑] 4.

‘트럼프 쇼크’ 한국경제, 정부는 어디에? [11월13일 뉴스뷰리핑]

검찰, 이대로면 ‘명태균 지시’ 따른 셈…예상되는 수사 시나리오 5.

검찰, 이대로면 ‘명태균 지시’ 따른 셈…예상되는 수사 시나리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