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지난 4월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막바지 협상이 벌어지던 때 택시 운전기사 허세욱씨가 분신했다. 우리 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인 듯하다. 영리하고 영악한 경제동물의 사회답다고 말하려니 동시대인의 한 사람으로 참담하다.
손학규씨의 한나라당 탈당을 두고 “보따리장사” 운운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무의식 안에 보따리장사에 대한 경멸의식이 자리잡고 있듯이, ‘막장’ 운운한 사람의 무의식에도 택시운전사에 대한 그 나름의 평가가 자리잡고 있다. 입만 열면 서민 대중을 위한다고 말하는 위정자들의 속내가 이러하지만, 서민 대중의 대부분은 이런 위정자들에게 거리낌 없이 표를 준다. 서민 대중의 이런 자기배반이 20 대 80의 사회라고 아우성이면서도, 또 민주정치를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누린다고 믿으면서도, ‘80’에 드는 서민 대중이 자신의 생존권을 개선하도록 하는 정치적 힘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사회 구성원들이 의식을 형성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지배세력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체제의 충실한 마름이 되어 안온한 삶을 추구하는 기능적 지식인들이 동원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요컨대 ‘20’이 부·지위·권력만 장악하고 있는 게 아니다. ‘80’의 의식세계를 점령하는 장치를 온통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허세욱씨는 마침내 알아냈다. 서민대중을 스스로 배반하도록 하는 지배 헤게모니가 어떻게 작동되고 관철되는지를. 결국 깊은 분노와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조용하고 겸손한 그를 분신으로 몰아간 것은.
허씨의 분신을 대하는 이 사회의 반응은 속물적이기도 하다. “중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사람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무엇을 알고 극단적인 행동을 벌였겠느냐?”고 말한다. 그렇게 묻는 사람은 그 협정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노무현 정부가 제대로 협정 내용을 공개하지도 않은 채 찬성 여론을 강요하는 폭력을 휘두르지만, 사회 구성원은 정보의 주체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 채 그것을 자기 의식세계 안에 집어넣고 그것을 고집한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은 바뀌지 않고 20 대 80의 사회는 견고해진다.
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평가하려면 제대로 알고 평가하는 게 도리다. 서울의 택시운전사 허세욱씨, 봉천6동 철거민, 관악주민연대 회원, 참여연대 회원, 민주노총 한독운수노동조합원, 민주노동당 당원, 120만원도 안 되는 월급에서 각종 회비를 꼬박꼬박 내고 단체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한 사람.
나는 택시운전사의 일상이 어떤지 알고 있다. 서울의 택시 노동 조건이 파리보다 훨씬 나쁘다는 점도 알고 있다. 허세욱씨는 그런 일상 속에서 신문과 책에 줄쳐 가며 읽으며 세상을 공부했다. 대학가에서 사회과학 서점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그날이 오면〉 서점에서 20만원어치 상품권을 구입하기도 한 사람. 그는 시대의 배반을 알아냈다. 그를 무시하려는 것은 시대의 배반에 눈감으려는 것이며, 그를 애써 외면하려는 것은 그가 ‘숱한 나’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민중이 누구인지, 시민사회 운동이 무엇이며 진보가 무엇인지, 그리고 순탄치 않은 삶을 치열하게 살면서 알아내고 실천에 옮긴 우리 시대의 늠름한 민중의 표상이다. 그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의 동시대인이라면 잠시라도 ‘힘내세요 허세욱님 카페’(cafe.daum.net/taxidriver53)를 찾는 성의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홍세화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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