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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이 땅의 교사는 분노를 모르는가

등록 2007-10-30 18:24수정 2018-05-11 15:57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어린 학생들의 가슴 아픈 죽음이 있었던 학교조차도 아무 일 없었던 듯 경쟁의 일상을 보낸다. 아이들의 설렘과 열정을 용납하지 않는 어른들의 주도면밀한 노력도 바뀌지 않았다. 간간이 들리던 교사의 탄식과 자책도 바쁜 일정에 밀려났다. 눈물어린 조사를 읽던 친구와 책상에 놓인 꽃의 잔상만이 이 사회의 반성을 대신할 뿐이다.

대부분이 자신을 안정적인 직업인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땅의 교사들은 분노할 줄 모른다. 그리고 ‘교수’ 아닌 ‘교사’라는 명칭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지식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래서 사회와도 자신과도 긴장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더욱 가혹한 경쟁구조에 내몰겠다는 유력한 대선 후보의 목소리에 이처럼 무덤덤할 수가 없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아주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부자를 위한 교육정책을 내놓았다. 교육현장이 계급 투쟁의 현장이고, 교육과정이란 계급 계층의 재생산을 합리화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평준화 기조를 허물고 자립형 사립고를 100개로 늘리고, 자율성의 이름으로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주겠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부자-승자 독식’ 체제를 구조화하겠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자신의 삶의 소중함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물음이다. 교사들이 만나는 아이들의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크기와 잣대가 바로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자신을 당당한 자유인으로 바라볼 때 학생들을 당당한 자유인으로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교사들은 교사회가 법제화되어 있지 못해 학교 운영상 토론에서도 주체가 되지 못한다. 교무회의에서 교장과 교감의 전달사항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 일상에 길들여진, 대부분이 자유인의 상상력을 잃어버린 존재에 머물러 있다. 기존 체제와 질서에 이처럼 순응하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자유인의 상상력과 꿈의 날개를 펴도록 돕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교사들이 학원 강사보다 못하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눈길에 순응하며 행정처리 업무에 쫓기고 있는 현실 …. 안정된 직업인으로 만족하고 있는 듯한 교사들의 자화상이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자유인이기를 스스로 거부한 교사들은 사회모순에 맞서 싸우지도 않지만 솔직하지도 않다. 20 대 80으로 양극화된 사회,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각개약진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에서 구성원을 지배하는 것은 불안이다. 가난한 집안 자식들도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없는 돈에 사교육비를 들여야 하는 것도 이 불안 때문인데, 교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계층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는 듯 종용함으로써 그들이 ‘88만원 비정규직’을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젠 솔직히 말할 때가 되었다. 이 후보가 솔직했듯이 말이다. 가난한 서민일수록 로또복권에 매달리듯 엷은 가능성에 절망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해법은 다른 데 있다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계층 상승의 기회가 닫혀 있다면 그런 사회구조를 혁파하는 길밖에 없다고. 학부모의 불안을 자양분 삼아 안정된 직업인으로서 그 알량한 위치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젠 정녕 분노할 줄 아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홍세화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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