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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홀로서기인가, 연대인가

등록 2008-01-01 18:14수정 2018-05-11 15:59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흘러가는 시간에 이름 붙인 것에 불과하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는 사람에게 새해라는 말은 잠깐이나마 희망의 숨을 쉬게 한다. 새해 첫날, 한국 사회가 여전히 ‘진보적 가치’를 선호한다는 <한겨레> 기사를 읽으면서 어느 작품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되뇐 말을 돌이켜본다. “홀로서기인가, 연대인가.”

한겨레가 발표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경제엔 ‘보수’인데 사회엔 ‘진보’라고 한다. 달리 말해, 경제적으로는 ‘홀로서기’를, 사회적으로는 ‘연대’를 선호한다는 뜻인데, 언뜻 모순이고 이율배반으로 보이지만 솔직함이 담겨 있다. 물질적 풍요를 얻으려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홀로서기 편에 서지만 그렇지 못할 때엔 사회적 연대에 기대려는 것이다. 내일이 불안한 사람들의 자연스런 반응이라 하겠다.

정치가 본디 고귀한 까닭은 공공성 강화로 사회구성원 간에 보이지 않는 연대를 제도화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공공성 강화로 기본적 생존권을 확보하게 되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고 그만큼 구성원은 자아실현의 가능성과 함께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가질 수 있고 연대와 나눔의 손을 내밀 수 있다. 사적 나눔은 공적 연대를 낳지 못하지만 공적 연대는 사적 나눔을 낳는다. 조세부담률이 북유럽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세금폭탄론’을 떠들 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공적 나눔의 제도화에 반대하는 세력일수록 눈에 보이는 사적 나눔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는 배경인데, 그들은 또한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하면서 시장이 국가 부문을 잠식하도록 꾀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은 홀로서기의 손이지 연대의 손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줄어들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의 고귀한 소명에서 참여정부는 참담하게 실패했다. 대선 결과로 그 대가를 치렀다는 말로 그칠 수 없다. 지금 이 시각, 찬바람 몰아치는 새해 벽두에도 천막에서 굶으며 농성하고 고공에서 시위를 벌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외침에 연대의 손길은커녕 고민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정권이고 위정자들이다. 마지막 대통령 사면에서 보듯이 뻔뻔함으로 마감하려는 정권이다. 참여정부 5년이라는 배반과 무능의 시간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홀로서기로 무장하게 했고 이명박 정부를 낳게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리기’를 주창함으로써 참여정부가 경제를 죽였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죽인 것은 경제 총량이 아니라 사회양극화로 나타난 구성원 간 연대이며 그 제도화다. 그 죽음을 자양분으로 태어난 게 이 사회의 홀로서기 정신을 대변하는 이명박 정부다.

누구나 말하듯이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는 일인데 이명박 정부의 성장주의 일변도의 홀로서기 정신으로는 가당치도 않다. 일자리 창출을 말하지만 유가 인상 등 국제 환경도 녹록지 않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다. 일자리를 빌미 삼아 이 땅을 마구 파헤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 우리 자손에게서 잠시 빌린 이 땅을 마구 유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심각히 우려되는 것이다. 사람의 자연 착취는 오래된 일이지만 대운하는 차원이 다르다. 사람 사이의 연대를 넘어 자연에 대한 존중을 공유함으로써 그 자연과 더불어 사는 구성원들끼리 연대하는 삶이 자연에 대한 사람의 이기적 홀로서기 앞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 “홀로서기인가, 연대인가.” 이 질문은 이미 사람 사이에 머물지 않고 자연과의 관계로 확장되었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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