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 어린아이가 태어난 직후 작은 광주리에 넣어서 바깥에 내다 놓는 풍습이 있었다. 갓난애의 명을 길게 한다는 것이다. 버려졌다 살아난 아이가 외려 목숨이 길고 더 잘되리라는 주술적 믿음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그것은 죽음으로 내던져진 크나큰 ‘액’이었다. 상징적인 액을 당하고 겪음으로써 영아는 실제의 액을 벗어난다는 것, 이른바 액땜이다. 크지 않은 병에 걸리거나 사소한 접촉사고가 나면 ‘액땜했다’고 하는 것은 그 작은 액으로 장차 있을 큰 액을 면할 것을 바라는 내면의 주술이다.
태어난 뒤 바로 액땜을 함으로써 앞날의 안녕을 보장받는 희생적 제의는 시간의 소멸과 생성이 교차하는 설날을 전후한 풍습 곳곳에 배어 있다. 섣달 그믐에는 집안 대청소를 하며 액을 쫓고, 부엌·곳간·뒷간 할 것 없이 불을 밝혀 잠을 자지 않고 날을 세우는 수세(守歲)를 하며 잡귀의 출입을 막는다. 빗질할 때마다 빠진 한해치 머리카락을 모아 설날 해질녘 문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치는 것도 액땜 의식이다.
설날을 신일(愼日)이라고도 한 것은 그만큼 정갈한 새날이 부정을 타지 않도록 근신하고 조심했다는 뜻일 거다. 정초 길흉화복을 점치거나 신수를 가리거나 토정비결을 보는 행위는 액을 예견하고 1년 365일을 ‘신일’하고자 함이다. 오늘날에도 흔히 접하는 점복사상은 또다시 순환하는 신산한 삶을 얼버무려 위안을 받고자 하는 일종의 유희 아니겠는가. 장자는 “복은 새털보다 가볍다”(福輕乎羽)고 했으니 액을 막는 것도 액을 부르는 것도 마음의 결기에 달렸는지 모른다.
아무려나, 정초는 액막이 기간이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묵은 정부를 보내고 새 정부를 맞는다. 최근 인수위의 조변석개 뒤집는 설익은 정책은 온국민을 신열로 몰아넣었다. 큰 액을 막는 액땜이었길 바란다.
권귀순 여론팀장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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