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시장친화형 복지’의 덫 / 이창곤

등록 2008-02-14 19:48

이창곤 논설위원
이창곤 논설위원
아침햇발
25일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내건 복지 청사진은 ‘능동적 복지’다. 이 대통령 당선인 쪽은 최근 국정 과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를 5대 국정 지표 중 하나로 내걸었다. 세부 내용인 4대 전략 목표와 42개 국정 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고 떠오른 한마디는 ‘빈곤’이다. 문제의식의 빈곤, 정책의 빈곤, 복지사상의 빈곤이다. 반복지 담론마저 깔려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한국 사회의 핵심적 사회복지 정책 과제는 양극화 심화와 저출산·고령화다. 차기 정부의 지침이 될 이번 국정 과제에는 우선, 이 두 의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42개 과제 중 저소득층 자녀 지원을 위한 드림스타트 사업, 빈곤층의 공직 진출 확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적용 확대 등에서 연관성을 애써 찾아본다. 하지만 두 의제는 속성상 이런 단편적인 접근이 아닌, 경제와 사회정책 등 범정부 차원의 통합적 정책 접근이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특히 양극화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드러내는 열쇳말이다. 상하위 계층간의 소득 격차 확대, 기업과 산업 부문간의 격차 확대, 높아지는 계층 이동의 벽 등은 국가적 차원의 지속적 해결 노력 없이는 풀 길이 난망하다. 이번 보고서에서 당선인 쪽이 주창한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의 신발전 체제’를 이루기 위해서도 반드시 짚어야 할 과제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한테서 냉대를 받게 된 이유도 결국엔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42개 과제에 담긴 내용의 옹색함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2개 과제는 몇몇을 빼고는 이미 이 분야에서 제기된 기존 과제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들 과제가 그럴듯한 수사로 치장된 4개 전략 목표를 달성할 구체적인 방안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시된다. 예컨대, 첫 전략 목표인 평생복지 기반 마련은 본디 보편적 복지정책을 꾀할 때만 가능하다. 저소득층에게만 복지 혜택이 가고 중산층은 배제되는 선별적·잔여적 복지정책으로는 이 목표를 이룰 수 없다.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통합 및 재구조화, 지속 가능한 의료보장 체계 구축, 지분형 분양주택제도 도입 등만으로 평생복지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보는가? 아닐 것이다.

능동적 복지의 세번째 전략 목표는 시장 기능을 활용한 서민생활 안정이다. 지분형 분양주택, 금융소외자 신용회복 지원 등 4개의 핵심 과제가 여기에 딸려 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의 기본 방향, 이른바 ‘시장친화형 복지’의 성격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기대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우려되는 바가 더 많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 속성을 다음과 같이 본다. 보편적 복지보다는 빈곤층의 기초생계 보전을, 공공성보다는 시장과 경쟁의 적극 도입을, 복지재정 확대보다는 재정 효율화를, 국가 중심의 복지전달 체계보다는 시장 중심 전달체계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당선인이 강조해 온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늘어나 복지 수요가 줄어들”것이란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성장도, 복지 시스템의 효율화도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성장이 곧 복지 확충을 뜻하지 않으며, 효율화는 어디까지나 복지시스템의 합리적 운영이란 측면에서 다뤄질 것이지, 복지정책의 목표나 기본 방향과 결부시킬 요소는 아니다. 이를 앞세우다보면 자칫 본말이 전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시장친화형 능동적 복지는 효율화·다원화란 덕목에도 불구하고 국가복지가 여전히 취약한 한국에서는 복지정책의 방향에 치명적인 왜곡을 일으킬 덫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국가복지가 취약하고 반복지 담론마저 기승인 우리 사회에서 국가복지의 후퇴를 가져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적어도 복지 분야에서는 아직도 국가의 구실을 늘려야 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창곤 논설위원 go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