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출범한 정권인데 독설을 퍼부을 생각은 없다. 다만 ‘쓴 약’ 한 사발은 먹이고 싶다. 받아들이고 말고는 정권 마음이다.
대선 직후, 이명박 당선인의 몇 마디에 불안을 느낀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당선인은 지나친 자신감에 차 있었다. 12월19일 밤 그는 “국민의 뜻을 잘 알고 있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경제를 반드시 살리겠다”고 했다. 20일 당선인 회견 때도 그랬다. “압도적으로 지지해 주신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잘 안다고? 정말?
상황 판단의 ‘미숙함’은 아마추어의 전형적 특징이다. 이 대통령은 ‘경제만 살려내면 다른 허물은 국민들이 눈감아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국민의 뜻이 그렇게 간단할까? 민심은 오묘하고 변화무쌍한 것이다. 표를 몰아준 뜻을 그 자신들도 아직은 잘 모른다.
‘착각’도 아마추어의 특징이다. 우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착각이 있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일머리’가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럴까? 그는 재벌 회사에서 오너의 절대 신임을 등에 업고 출세했다. 서울시장으로서 4년 만에 몇 가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르다. 비유하자면, 현대건설 사장은 상선의 선장, 서울시장은 구축함의 함장 정도가 되겠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항공모함과 부속선단을 이끄는 함대 사령관이다.
함대 사령관의 임무는 함대가 지금 바다 위 어디에 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정확히 지시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한다. 함대 사령관이 기관실로, 갑판으로 뛰어다니며 선원들을 독려하려 든다면 그 함대가 어디로 가겠는가. 이명박식 리더십이 불안해 보이는 이유다.
집권 주체를 두고도 착각이 있는 것 같다. 지난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한 주역은 국민들이었다. 그 결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나라당과 범보수세력이 집권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자신’이 홀로 집권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 인사를 보면 그렇다. 한나라당이나 범보수세력에서 인재를 널리 구하는 노력은 하지 않고, 주로 개인적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기용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과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이게 이명박 정권이냐, 한나라당 정권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아마추어는 프로에 비해 확실히 ‘조급’하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어깨에는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장관, 청와대 수석들에게 “내각도, 수석들도 정기적으로 6개월이든 1년이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러분들 이제 사생활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비서관들에겐 “청와대 근무로 여러분의 고생길이 트였다”고 했다. 말이 너무 앞선다. 일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한 건’을 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다.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는 말을 듣고 아찔했던 것은 제안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놀라운 즉흥성 때문이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이나 빌 클린턴은 파티에서의 농담 한 마디까지 참모들과 미리 준비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애드립’은 용납되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이 대부분 참모들이 써 주는 대로 읽은 것은 멍청하기 때문이 아니다.
‘선무당 정권’이라는 야당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이 대통령은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유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행복해진다. 5년이 그의 앞에 놓여 있다. shy99@hani.co.kr
연재성한용 칼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