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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벌초 / 김종철

등록 2008-09-09 19:51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무딘 조선 낫 들고/ 엄니 누워 계신/ 종산에 간다

웃자란 머리/ 손톱 발톱 깎아드리니

엄니, 그놈 참/ 서러운 서른 넘어서야/ 철 제법 들었노라고

무덤 옆/ 갈참나무 시켜/ 웃음 서너 장/ 발등에 떨구신다

농촌의 모습을 세밀히 묘사해 온 이재무 시인은 벌초한 뒤의 느낌을 이렇게 노래했다. 돌아가신 분과 산 자와의 따뜻한 교감이 생생하다.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벌초가 일반화된 것은 아무래도 고려시대에 유교가 전해진 이후부터로 봐야 할 것 같다. 유교의 관혼상제는 기제사 대상에서 제외된 5대조 이하의 조상은 시제나 묘제로 모시도록 했다. 특히 송나라 주자가 ‘가례’에서 묘제를 중시한 이후 조상 묘의 풀을 깎는 벌초도 중요한 일로 자리잡혔을 것이다.

벌초의 대상은 부모, 조부모 등 가까운 조상뿐 아니라 시조까지 다 포함된다. 따라서 종중의 선산에 있는 조상 묘를 집안별로 나눠 분담하더라도 한 가구가 보통 7~8기 이상을 담당해야 한다.

핵 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현대인에게 벌초는 큰 ‘숙제’가 됐다. 벌초할 ‘일꾼’은 준 반면에 산은 우거져 묘소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다. 또 예초기를 다루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른들로부터 듣기는 했지만, 어느 분의 산소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순전히 의무감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다 하려니 고역이요, 말자니 남들의 손가락질이 부담이다. 이 때문에 추석을 앞두고 벌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남성들이 많다.


일부 가문에서는 벌초 대상을 가까운 조상으로 한정해 너무 먼 선조의 경우에는 후손들이 모여 간단하게 제를 지낸 뒤에 다음부터는 묘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조상과의 즐거운 교감을 유지하기 위한 전통의 현대화일까, 아니면 몰지각한 전통 파괴일까?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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