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가 능멸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을 대상으로 작전을 편다. 최후의 선택으로 망루에 오른 용산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진압작전을 펼쳤던 이명박 정권은 지난 2일 촛불 1년 기념집회에 대해 원천봉쇄 작전과 무차별 연행 작전을 펼쳤다.
작전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평화집회 자체를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모든 집회를 불법집회로 몬 뒤 참가자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하는 것이다. 모든 파업을 불법으로 몬 뒤 체포, 구속, 손해배상 청구, 가압류로 노동운동을 탄압한 탄탄한 경력을 시민운동 차원에까지 확장한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무자비하고 공격적으로 변한 경찰은 지난 1일 70여명을 연행한 데 이어 2일에는 서울광장과 명동 밀리오레 앞에서 100여명을 연행했다.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광장의 무대를 점거하면서 ‘하이 서울 페스티벌’은 중지되었다. 공권력은 이를 다시 시민들에 대한 연행, 체포, 구속, 손배소송의 빌미로 삼을 것이다.
지난해 촛불이 타올랐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시 국민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촛불을 모면하려는 거짓말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그 뒤 보여준 것은 자신을 고개 숙이게 한 촛불에 대한 복수심으로 꽉 찬 듯한 정권의 모습이었다. 촛불이 수그러들자 반대자들에 대한 집요하고도 철저한 보복이 뒤따랐다. 유모차부대를 비롯한 촛불 연행자들과 조중동 광고 저지 촉구 시민들에 대한 집요한 추궁은 물론, 미네르바 구속, <와이티엔>(YTN) 노종면 노조위원장 구속, <문화방송> ‘피디수첩’ 제작진 긴급체포 등 반대자를 용납하지 않는 앵톨레랑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용한 교사들을 학교에서 쫓아냈고,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책임연구원에게는 개인 대상 감사를 벌인 뒤 3개월 정직 징계를 내렸고, 국방부의 불온도서 지정에 맞서 헌법소원을 낸 법무관 2명을 기어이 파면했다. 품위유지 위반, 성실의무 위반, 복종의무 위반, 군 위신 실추 등이 파면이나 징계를 당한 이유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성내는 것은 기자들에게 욕설을 해댄 반문화적인 문화부 장관에 이어 야당 국회의원에게 마구 욕설을 해댄 반외교적인 외교부 장관을 비롯하여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유력인사의 실명을 밝혔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대는 조선일보처럼 앵톨레랑스한 세력들이 자주 보여주는 모습이다.
흔히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는 정부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이 말은 우리 국민을 모독하는 말이며, 우리의 민주주의 역량을 무시하는 말이다. 국민은 ‘실용’에 속았다는 사실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공정택 학습효과도 작용하여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범민주진보 김상곤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4·29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에 전패를 안겨주었다. 보통 정권이라면 반성적 성찰의 계기가 되겠지만 앵톨레랑스한 세력이기에 더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위험이 있다. 오로지 힘의 논리로 무장한 그들에게 촛불시민이 적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임을 알게 해주는 것은 우리의 결집된 힘뿐이다.
지금 혼신의 오체투지가 아스팔트를 견디듯 이 땅의 민주주의가 시험당하고 있다. 작년에 타올랐던 촛불이 우리에게 외친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영상/박종찬 기자 pjc@hani.co.kr
[현장] 촛불 1주년, 경찰 집회봉쇄 항의 도심 곳곳서 충돌 [%%TAGSTOR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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