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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결체 어떠셨어요?”

등록 2005-05-20 18:03수정 2005-05-20 18:03

소심한 탓인지, 창간 기념호 제작이 마무리된 뒤에도 안도감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독자들의 반응, 특히 새 글꼴인 ‘한겨레 결체’(한결체)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나올지 불안했습니다. 저희 신문사 안에서도 글꼴 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의 평가도 처음엔 양극단으로 갈리더군요. ‘어색하다와 신선하다’ ‘엉성하다와 시원하다’ ‘잘 안 읽힌다와 눈에 확 들어온다’ 등등 ….

특히 첫날엔 어색하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사실 이 점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글꼴과 완전히 다른 글꼴을 내놓았는데, 익숙하다는 반응이 나왔다면 오히려 이상했겠죠. 기억나시겠지만, 엘지그룹이 10년 전 사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꿨을 때, 특히 새 상징마크는 “외눈박이 같다!”는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소비자들에게 아주 친숙한 이미지로 받여들여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엉성하게 보인다는 것인데, 이 역시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안남미로 밥을 지은 것처럼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불평하셨습니다. 기존의 글꼴은 모두 반듯한 네모 틀 안에 글자를 맞춰놓은 것입니다. 당연히 질서정연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한결체는 처음으로 글자를 네모 틀에서 풀어주었습니다. 네모 틀 안에 집어넣기 위해 글자를 짜부라뜨리거나 억지로 잡아늘이지 않은 것이죠. 글자 모습을 생긴 그대로 살린 것입니다.

한결체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분들은 바로 이 점을 느끼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희 편집국에 최인호 부장이라고 계십니다. 교열부장이신데, 우리 글을 지키고 다듬는 데 애쓰는 분이죠. 아무튼 최 부장께서 80면이나 되는 이번 창간 기념호의 교열을 마친 뒤 “눈길이 쉽게 넘어가 다른 때보다 눈이 훨씬 덜 피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해 창간 기념호는 40면이었습니다. 한결체의 강점 가운데 하나가 한 자 한 자 읽히는 게 아니라 단어 하나 하나가 한 묶음으로 읽힌다는 점입니다. 한결체의 가독성은 여기서 나옵니다.

주의 깊은 독자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을 텐데, 창간 기념호 이후 기사의 한 행 길이가 이전보다 늘어난 기사들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어제 아침에 보신 타블로이드판 2섹션 ‘18.0°’는 거의 모든 기사들이 그렇습니다. 이처럼 한결체는 행을 길게 하면 읽기 편한 ‘가로쓰기 전용’ 글꼴입니다.

물론 아직 개선할 점이 많습니다. 본문 글꼴도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지만, 특히 제목 글꼴은 신문사 안에서도 불만이 많습니다.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글꼴 개발 중간 단계에서 사용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탓에 전체 지면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글꼴에도 ‘가족’이 있다고 합니다. 한결체는 지금 ‘가장’만 있는 셈이죠. 이른 시일 안에 한결체에 온전한 가정을 꾸려 줄 수 있도록 더 분발하겠습니다.

끝으로 한가지 더, “한결체가 좋아 나눠쓰게 해 달라”고 많은 독자 분들이 전자우편과 전화로 요청하셨습니다. 아직 답신드리지 못한 점,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최종 완성본이 아닌 탓에, 어느 시점에 나눠드릴 수 있을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곧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한결체! 아직 낯설더라도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여러분의 사랑이 한글 글꼴 진화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안재승 편집기획부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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