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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성찰 없는 권력의 가학성

등록 2009-05-24 22:12수정 2018-05-11 16:04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살아 있는 권력의 가학성 앞에 죽은 권력이 죽음으로 응답했다. 성찰할 줄 모르는 권력이 성찰과 비판을 죽이는 시대를 반영하는가. 온건한 나라, 정상적인 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참담한 일이다. 실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말뿐이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내세우며 앞선 정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새 정권과, 새 정권의 충견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검찰에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애초 기대할 수 없었다. 검찰은 가학성에서 하이에나 같은 족벌언론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인가, 그들은 직접 추궁하는 대신 언론에 연일 수사기록을 흘리는 행위를 예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모든 권력이 위험하지만,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그만큼 더 위험하다. 자성할 줄 모르고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휘두르는 칼날은 갈수록 무자비해지고 그 칼날에 당하는 상처의 아픔은 스스로 성찰하는 만큼, 또 자책하는 만큼 더 깊어진다. 이를 알 리 없는 ‘29만원 재산’의 전두환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꿋꿋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한다. 수많은 국민이 아쉬움보다 비통함에 젖는 것은 그런 차이에서 온 것이리라.

촛불의 힘이 잦아들자 언제 머리 숙여 사과했더냐 하는 식으로 진정한 자기반성을 보여주지 않는 이명박 정권은 수구족벌언론에 힘입어 언론권력으로부터도 별로 견제되지 않는다. 국민으로부터의 견제와 비판이 남아 있지만 이는 검·경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막으면 된다. 촛불집회와 언론소비자운동에 대한 집요한 수사, 미네르바 구속, 피디수첩 관련자 체포,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 사건 등에서 이 나라 검찰은 정치 검찰의 성격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막가자는 거지요!”는 과거 한때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벌어지는 현실이다.

검찰에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의 막강한 권한을 준 것은 국민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라는 소명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고유의 무기를 주로 이명박 정권의 경비견이 되거나 자기 보호를 위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검찰은 임채진 검찰총장이 포함된, 삼성 떡값 검찰 명단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기소하지 않는다. 물론 김용철 변호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더 이상 훼손될 것도 없기 때문인지 ‘떡검’의 명예를 ‘떡검’ 수준에서 지키기 위해서다. 천신일 수사를 세무조사 로비에 제한하는 등 사회적 사건을 검찰 편의로 한정 짓고,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언론소비자운동을 편 시민들은 끝까지 추적하여 형사처분하지만 경찰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고소·고발에 대해선 피고소·피고발인들에 대한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죽봉 대신 ‘죽창’이라고 부르며 “한국 이미지에 큰 손상”이라고 주장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미네르바를 체포·구속한 검찰이 하나 되어 그리는 한국의 이미지는 실명제와 관련하여 구글에게 망신당한 인터넷 강국 한국의 이미지와 만난다.

남을 닦달하고 단죄하는 데 익숙할 뿐 자기성찰이 없는 검찰의 자화상은 용산참사 수사기록 3천쪽 분량을 공개하지 않는 데서 도드라진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에는 방영되지 않은 녹화기록까지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으면서, 재판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용산참사 관련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모순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성찰 없는 권력이 활개 치는 반역의 시대를 죽음으로 맞선 고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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