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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국가의 왼손

등록 2009-11-03 21:10수정 2018-05-11 16:06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신자유주의가 주창하는 ‘국가부문의 축소’라는 말에 일반 국민은 물론 좌파들까지 현혹될 수 있다. 그들에게 국가를 시민사회와 구분하고 서로 긴장하는 관계로 보는 경향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주창하는 국가부문의 축소란 국가의 왼손은 약화시키지만 국가의 오른손은 더욱 강화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던 이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였다. 오늘날 그의 말은 한국에서 넘칠 정도로 증명되고 있다.

최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 법원공무원노조의 3개 노조가 통합해 총 조합원 12만명의 통합공무원노조로 새로이 출발하면서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의했다. 모든 비판세력, 반대세력에 대한 불관용을 기본지침으로 갖는 이명박 정권의 전방위 탄압은 이미 예정되었다. 법을 바꿔 공무원노조의 정치활동을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가 하면, 노조 사무실을 폐쇄하겠다고 나섰고 노조 간부를 파면시켰다. 이 정권은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국가귀족에게 복지부동, 상명하복하는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남아 있는 게 선진화의 길인 양 알고 있는 듯하다.

잘 알다시피 피에르 부르디외는 국가를 시장권력에 의해 포섭, 관리되는 국가의 오른손(경제 부처, 고위 관료)과 국민의 복지를 위해 지출하는 국가의 왼손(노동, 의료, 교육, 복지 등)으로 나누었다. 그가 시사한 국가의 사회부문과 경제부문 사이의 긴장은 유럽의 각 정권들 내부에서 노동, 교육, 복지 등 왼손의 부처들과 오른손인 경제 부처들 사이의 긴장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같은 정당 출신이지만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때론 정적 사이처럼 싸우기도 한다. 이는 좌파 정권이나 우파 정권이나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한국처럼 노동부는 ‘제2경제부’나 다름없고 보건복지부는 ‘복지부동부’에 가까운 상황에서는 국가의 왼손이라는 무거운 짐을 조직된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오롯이 져야 한다. 그만큼 공무원노조는 국가의 오른손의 탄압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오른손은 왼손의 견제부터 무력화시켜야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처럼 막무가내일 때는 더욱 그렇다.

통합공무원노조에 대한 시민사회의 각별한 관심과 연대가 요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전히 “공무원이 노동자냐”라는 힐난이 살아 꿈틀대는 사상적 반신불수의 토대 위에서 우리 공직사회는 아직 전근대성과 비합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권위주의 관료사회에서 국가귀족의 마름이나 머슴에 머물 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조직 통합되어 당당히 책임지는 정치적 인격체가 되겠다는 움직임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성숙이다. 그들의 노동권과 정치적 시민권이 확장되는 만큼 사회 또한 성숙되고 공직사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는 줄어들 것이다.

물론 통합공무원노조는 정식 출범과 함께 자기비판과 성찰이 따라야 할 것이다. 앞으로 국가의 오른손에 의한 탄압은 물론 공무원 구조조정, 공무원 연금법 개정, 공기업의 사기업화에 맞선 싸움도 마땅히 해야겠지만 진정한 공복이 되겠다는 다짐이 국민과 지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라야 “사회투쟁이 국가의 한복판에 남겨 놓은 흔적”(부르디외)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국가의 왼손이 될 수 있다.

통합공무원노조의 출범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연대의 인사를 드린다.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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