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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대전환기,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으로

등록 2009-12-29 22:30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최근 미국 잡지 <타임>은 지난 10년을 ‘최악의 10년, 지옥의 10년’ 등으로 표현했다. 미국인으로선 그럴 만도 하다. 무엇보다 9·11테러와 미국발 금융위기가 이 기간에 일어났다. 또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많은 희생자만 남긴 채 미국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치부를 안팎에 그대로 드러냈고, 이라크인 포로 학대와 애국자법 등은 ‘자유의 수호자’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21세기 첫 10년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따져보는 데는 미국의 이런 모습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지난 10년은 세계사에서 세 개의 큰 사이클이 함께 바닥을 치는 시기였으며, 그 한가운데에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사이클은 신자유주의 퇴조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지난 30년간 승승장구해온 신자유주의 주체 자체의 붕괴였다. 둘째 한 세기에 걸친 미국 패권기의 끝이다. 이미 일상용어가 된 ‘G2’라는 말은 미국 단일 패권의 시대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셋째 300년에 걸친 대서양시대의 쇠퇴다. 세계경제의 견인차인 동아시아 나라들은 이미 수조달러의 대외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갈수록 커진다. 최근의 코펜하겐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미국과 유럽이 지구촌 의제를 설정해 끌고나가는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앞으로 10년은 새 질서가 모습을 드러낼 기간이다. 공동체를 배려하는 경제·사회체제, 여러 중심이 각축하는 명실상부한 다극주의, 생산력과 아이디어·인력의 근거지이자 의제 설정자·추진자로서 아시아의 부상 등이 그 주된 내용이 될 수 있다. 국가가 큰 구실을 하고 비정부기구와 시민들이 활발하게 참여할 새 경제·사회체제는 활력 있는 경제와 복지가 조화를 이룰 길을 모색할 것이다. 다극주의는 이런 시도를 지구촌 차원에서 구현하는 틀이 되며, 그 속에서 아시아 나라들의 발언권은 더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어떤 경험을 했을까. 가장 뚜렷한 것은 양극화 심화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이티 거품과 카드 거품·부동산 거품 등과 결합하면서 중산층이 지속적으로 무너졌고, ‘강부자’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은 이런 추세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아시아 나라들과의 통합도 빠르게 진행됐다. 중국이 제1무역상대국으로 자리를 굳힌 것은 물론 동남아 나라들과의 교역도 크게 늘었다. 두 차례 정상회담 등 남북 화해·협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 전시작전권 반환 등 한-미 동맹 재조정은 이런 시대 흐름에 부응한다.

지금과 같은 전환기에 가장 필요한 일은 계층·지역·학력 등에 따라 갈라진 국민들을 공동의 가치와 이해관계로 묶어 실질적 통합을 이뤄낼 개혁이다. 그러려면 더 많은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협치 사회가 돼야 한다. 이는 곧 다가올 고령사회와 한반도 통일에 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 당장 주체적 고민의 회복이 요구된다. 그때그때 잘 먹고살면 된다는 몰역사적 실용주의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시야와 실천력을 높일 때다. 자율성과 민주주의, 높은 도덕성과 문화, 평화국가로서 새 국가상 창출 등은 이들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것이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으나 세상은 그렇게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망할 건 없다. 사람은 잘 알기 어렵고 긴장도가 높은 상황일수록 창의력과 활력을 더 발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에 살고 싶으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태평성대보다는 격변기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행운의 시대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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