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정치학자 피파 노리스는 미국 등 서구 8개국을 연구한 결과 시위, 소비자 보이콧, 비공식 파업, 건물 점거와 같은 ‘비제도적’ 정치참여의 빈도가 197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2002년 영국에서 출간된 <민주주의의 불사조: 정치적 행동주의의 재조명>을 통해서였다.
시위는 비민주주의 국가나 빈곤국가에서 많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노리스의 연구 결과 스웨덴·독일·노르웨이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시위 횟수가 가나·엘살바도르·인도·이집트 등 제3세계 국가들보다 훨씬 많았다. 또한 시위활동은 나라의 선진화 척도로 흔히 사용되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 프리덤하우스의 민주주의지수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시위 참가자도 소외계층이 아니라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은 집단이 주축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시위정치가 일상화하는 배경 설명도 흥미롭다. 미국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들은 물질적 가치보다 개인의 자유, 자기 표현, 삶의 질을 강조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갖는다고 했다. 또한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부 정책에 적극 개입하고자 하는데, 기존 정치권이 이들의 새로운 가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위나 집회 방식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회 흐름이 2008년 촛불집회 이래 관찰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런 사회에선 공권력 행사도 하드파워보다는 설득과 동의 형성을 강조하는 소프트파워 스타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무관용 원칙’으로 집회시위 문화의 선진화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무관용을 원칙이라며 들먹이는 데서부터 경직성이 느껴진다. 세상의 변화와 동떨어져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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