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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강력한 참칭 보수에 맞서야

등록 2010-01-24 19:30수정 2018-05-11 16:07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보수를 참칭하는 수구·극우세력의 집단적인 기동에 익숙해진 탓일까, 광우병 보도와 관련된 문화방송의 피디수첩 제작진에게 사법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자 그들의 몰상식한 행태는 도를 지나치고 있는데 시민사회의 반응은 ‘그러려니’ 하는 편에 가깝다. 또 그들을 ‘보수’정당, ‘보수’언론, ‘보수’단체라고 부르는 것에 별로 꺼리지도 않는다. 그들의 강력한 힘 앞에 주눅 들어 “이념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에 스스로 무장해제한 사람도 적지 않다. 미필적이지만 보수가 아닌 세력이 보수의 이름으로 때마다 기동할 수 있게끔 진지를 구축하는 데 도와주는 꼴이다.

보수 세력이라면 응당 국가, 민족, 법, 가족, 전통 등 보수할 가치가 있어야 할 터, 그러나 이 땅의 자칭 보수세력에게 보수할 것은 일제강점기 이래 누려온 기득권인데 한 번도 제대로 통제된 적이 없기 때문에 뻔뻔한데도 기고만장하다. 사적 안위와 영달을 추구하려고 민족을 배반한 일제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위에 덧붙여진 분단의 질곡은 사익을 추구해온 그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고 애쓰게 하는 대신 상대방에 대한 이념 공세라는 적반하장의 무기를 주었다.

정연주 한국방송 전 사장, 미네르바,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시국선언 교사들에 이어 피디수첩 제작진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세력들이 이념공세를 펴는 것은 “논리로 안 되면 인신을 공격하라”고 했던 키케로의 반어법의 적자들로서의 그들의 정체성이 반영된 것이다.

실상 한국처럼 보수를 참칭하는 가짜 보수세력이 지배하는 사회는 찾아보기 어렵다. 뻔뻔할수록 지배할 수 있는 사회, 문제는 우리가 거기에 너무 익숙해졌거나 절망한 탓에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는 점에 있다. 다른 사회에서도 종종 극우세력이 준동하지만 그들과 가장 거리를 두고 비판·단죄하는 세력은 좌파보다는 보수세력인데, 그런 구분 짓기가 합리적 보수의 당연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가짜 보수세력의 잘못된 행태를 꾸짖을 줄 아는 합리적 보수가 거의 없는 것은 가짜 보수세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며 어쩌다 꾸짖기라도 할라치면 좌파나 운동권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최근 판사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이 강력한 것은 물적 토대가 튼튼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극단주의, 사익 추구에 내재되어 있는 열성이 그들을 강력하게 하며, 또한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구조 속에서 악화들이 부문을 뛰어넘어 서로 유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극우·수구세력이 강력한 사회에서 진보정치세력은 그 교두보조차 획득하기 어렵다는 점은 우리 현대사가 이미 가르쳐준 바와 같다. 정치세력 구도는 마치 시소와 같다. 극우·수구세력이 약화되는 그만큼 진보정치세력이 강화될 수 있으며, 지역주의 틈새 등에서 명분과 실리 사이를 저울질하는 약삭빠른 세력도 조금이나마 왼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올해 6월 지방선거는 정치 판도에 변화를 주는 변곡점이 되어야 한다. 호남지역 교육감들도 저들 세력에 포함된 사면초가 속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내놓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은 우리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수구세력의 국민교육헌장 따위에 대칭되는, 민주공화국의 공교육에 걸맞은 획기적인 사안이다. 광역지자체에서도 제2, 제3의 김상곤이 나와야 한다.

우리에게 제기되는 것은 연합의 조건이 아니라 승리의 조건, 더 정확히 말해 극우·수구와 한 덩어리인 가짜 보수세력에게 패배를 안겨줄 조건인 것이다.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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