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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야당이 존재감을 상실한 이유 / 박창식

등록 2010-02-01 20:24

박창식 논설위원
박창식 논설위원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다. 말로 자기주장을 펴고, 말로 대중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는 정치인과 정치세력한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말의 챔피언이다. 우선 그는 말을 매우 적게 한다. 할 말만 꼭 집어내서 하고, 그밖의 문제는 기자들이 아무리 물어도 답변하지 않음으로써 곁가지가 생기지 않게끔 한다. 메시지가 단순하면 청중의 관심이 집중되기 쉽고, 메시지가 복잡하면 주의력이 분산되기 쉬운 법이다. 수용자의 관심 총량에 한계가 있다는 ‘관심(attention)의 경제학’을 그는 잘 이해하는 듯하다.

세종시 국면에서 박 의원은 ‘신뢰론’ 하나만을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없이 토의했고 선거 때마다 수없이 약속한 사안”을 뒤집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됐다. ‘한마디로 찍어’ 비판하니 메시지가 간명하고 알기 쉬웠다. 막대한 홍보 물량전을 앞세운 이 대통령 쪽의 공세를, 이런 화두 하나를 붙들고 박 의원은 나름대로 막아냈다.

이 대통령 쪽에선 “신뢰도 좋지만 국가 백년대계가 더 중요하지 않으냐”는 논법으로 반격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효율성 측면에서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면서, 박 의원을 국익을 외면하고 과거의 약속에만 집착하는 고루한 사람으로 깎아내리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보수성향 신문들에는 세종시 관련 여론조사를 하면서 ‘국가장래론’ 대 ‘신뢰론’을 제시하고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는 설문 문항까지 등장했다.

‘국익’과 ‘신뢰’를 병립시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되는 논법이다. 그게 왜 그런지는 지면관계상 설명을 생략하겠다. 어쨌든 상대가 ‘논점 비틀기’를 시도하자, 박 의원은 세종시 원안에 담긴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가치를 새로이 제기하기 시작했다.(1월28일) 신뢰가 정책 추진의 과정과 행태에 관한 문제라면,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은 세종시 구상의 정책적 본질에 해당하는 가치다. 따라서 새로운 문제제기는 기왕의 신뢰론 이상의 파급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세종시 국면에서 야당의 논법을 살펴보자. 우선 민주당이 세종시 수정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 당대표, 원내대표, 무슨 최고위원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씩 보태가면서 모든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부은 결과이다. 많은 메시지를 동시에 쏟아놓으면 수용자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단 관심의 경제학 일탈이다.

민주당은 정운찬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뜻을 같이하면 국회 통과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대표적으로 실없는 소리다. 한나라당의 친박 계보가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더라도 자력으로 반대할 따름이지, 야당의 해임건의안에 동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박근혜 의원의 존재감은 키워주고, 야당은 더욱 작아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말의 효과도 야당에 나쁘다.

몇해 전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정치권에서 필독서로 꼽혔다. 진보주의자가 성공하려면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며, 특히 상대방의 프레임(논의의 틀)에 걸려들지 말고 나의 프레임으로 상대방을 끌어오라는 게 이 책의 메시지였다. 언어를 연구하기로 말하면 박근혜 의원이 매우 치밀하다. 상대방의 논점 비틀기에 맞서 프레임 선점도 거듭 꾀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런 노력이 적어 보인다. 민주당이 세종시 국면에서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는 이런 까닭이 있다.


박창식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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