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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정상회담, 의지와 현실의 거리

등록 2010-02-02 20:08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남북 정상회담 관련 발언들은 형식과 내용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우선 영국 <비비시> 방송은 지난 1월29일 이 대통령과의 회견 내용을 방송도 하지 않았다. 이 회견을 두고 국내에서 떠들썩한 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다. “올해 안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것 같다고 본다”고 한 내용도 돌출적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이 발언을 다르게 브리핑해 물의를 빚은 것은 회견에 앞서 핵심 참모들과 최소한의 조율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다음날 이 대통령의 미국 <시엔엔> 방송 회견과 관련해서도 청와대는 실제 방송되지 않은 내용을 언론에 배포했다가 금세 거둬들였다. 의도적으로 정상회담이라는 이슈를 부각시키려 한 게 아니라면 너무 아마추어적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온갖 설이 난무한다. 이미 물밑접촉이 상당히 진행돼 3~4월에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섣부른 예단에서부터 초보적 접촉이 과대포장됐다는 분석까지 다양하다.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것은 없다’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대통령의 발언 의도를 계산하며 애매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그 와중에도 분명한 것은 있다. 첫째는 이 대통령의 의지다. ‘올해 안’이라는 표현은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뜻에 가깝다. 둘째는 자신감이다. 지금 북쪽은 체제안정 측면은 물론 경제·외교·사회적으로 어느 때보다 취약하며 남쪽이 손을 잘 벌리면 끌려올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정부 안에서 늘고 있다. 대통령 발언은 이런 자신감을 반영한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큰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양쪽의 관심사와 정책기조가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사실 정상회담에 대한 남쪽 의지의 상당 부분은 내재적이라기보다 외부에서 온 것이다. 미국은 대북 협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남북관계가 풀리기를 바란다. 북한도 지난해 여름 이후 일관되게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한다. 또한 4월 핵안보 정상회의와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를 전후해 북한 핵문제가 전환점에 들어설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상황에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집권 3년차라는 권력주기적 특성 등이 작용해 정상회담이 눈앞의 사안으로 다가온 것이다.

의지와 자신감이 자의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기본인식의 재설정과 일관성 있는 태도다. 핵심은 세 가지다. 우선 북한붕괴론에 대한 집착에서 깨끗이 벗어나야 한다. 각료급 인사가 공공연하게 북한 급변사태를 거론하는 상황에서는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과거 김영삼 정권 때 그랬듯이 남북관계가 양쪽 정권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평화체제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북한은 자신의 체제안보를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돼야 핵 포기 결단을 내릴 것이다. 체제안보는 평화체제 논의와 직결되며, 그 논의는 남쪽이 적극 나서야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평화를 논의하느냐’가 아니라 평화체제를 만듦으로써 핵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10·4 및 6·15 선언을 전향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두 선언을 믿을 수 없다면 앞으로 정상회담이 열려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제대로 이행된다는 보장이 없다. 두 선언 이행은 북쪽의 책임 있는 행동을 끌어낼 훌륭한 지렛대이기도 하다. 정부가 비중을 두는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도 이런 신뢰의 바탕 위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잘 짜인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 전환과 핵문제 해결 노력에서 결정적 분기점이 된다. 정부는 막연한 낙관론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로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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