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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제사도 아들딸 구별하지 말고…

등록 2010-02-08 19:34수정 2018-05-11 15:05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예순을 넘긴 내 친구들은 우리 세대가 전통적인 모습의 제사를 지내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정부모나 시부모 모두 고인이 되고 집안의 어른이 된 위치에 서게 되면서 자신들이 죽기 전에 제사문화를 바꾸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 ‘내 한 몸 희생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윗대들 하는 방식을 따라온 세대들이지만 자식들에게만은 힘든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평생 시집 제사 지내느라 뼛골이 빠졌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자녀들 얼굴을 둘러보아도 자기 앞가림은커녕 제사라는 짐을 지고 갈 만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명절이 다가오면 제사 때문에 이혼하고 싶다는 며느리들의 불평과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이 심각하게 거론되는 현실을 고려해서이기도 하다. 내 제사 지내느라 아들이 사느니 못사느니 할 생각을 해도 끔찍하고 내 제사 지내겠다고 시집 눈치 보며 종종걸음하느라 딸이 애간장이 탈 생각을 해도 그렇고, 제사는 내 대에서 이제 그만이라고 못박는다.

직장 다닐 때 명절 전날 여직원들이 제사음식 마련 때문에 일찍 퇴근하는 모습을 보면 남자 직원들은 ‘여자들의 직업의식이란 게 쯧쯧’ 하고 빈정대다가도 어느 집 며느리가 제사 잘 지낸다면 칭송하기 바빴다. 여론도 그렇다. 대체로 여자들의 문제제기에 동의를 하면서도 남자들이 좀 거들면 좋지 않겠느냐, 일 끝나고 미안하다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면 여자들은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남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 한마디로 끝날 일은 아니고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일이다.

문헌을 보면 조선시대 중기를 지나면서 맏아들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정착된 듯하다. 당연히 제사 일은 맏며느리 소관이었다. 제사의 상속은 재산 상속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제사를 물려받는 맏아들이 집안을 이끌 의무와 재산을 상속할 권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나 조선조 초기까지는 처가살이도 많았고 딸아들 구별 없이 돌아가며 제사를 지냈다. 윤회봉사라 하여 조선시대 후기에도 아들딸 구별하지 않고 제사를 돌아가며 지내고 재산도 똑같이 상속했던 집안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주말 텔레비전 주말드라마에서 어떤 며느리가 명절날 시집에 안 가고 친정 제사 했다고 인터넷상에서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개념 없는 며느리’라느니 ‘같은 며느리 입장에서도 너무했다’는 등 비난여론 일색이었다고 한다. 난 얼핏 ‘참으로 개념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시집에는 제사 지내고 음식 장만할 사람이 여럿 있는데 친정에는 제사 지낼 사람이 그 여성뿐이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 싶어서였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런 며느리를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문제제기라는 측면에서 논의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사라는 것이 사전적으로는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공경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기본 이유는 실은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죽은 사람 먹으라고 하는 음식도 아니고 산 사람 먹자고 하는 것이고, 후손들이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가족 간의 단란하고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면 조상님 혼이라도 내려다보며 흐뭇해하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차려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들이 갈등하는 것은 조상 보기에도 민망한 일이다.

아들딸 구별 않고 둘만 낳았던 내 친구들은 지금 아들딸 구별 말고 재산도 남기고 아들딸 구별 말고 제사도 똑같이 지내도록 하는 전통을 새로 만들어가고 싶어한다. 제사의 형식도 바꾸어 가야겠지만 우선 아들 가진 부모들이 앞장서서 며느리 집안의 제사와 내 집 제사를 공평하게 하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자고 하고 있는 중이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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