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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MBC / 이재성

등록 2010-02-09 18:36

이재성 기자
이재성 기자
수십명의 서독 검찰과 경찰이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함부르크 사무실을 급습한 것은 1962년 10월26일 밤이었다. 검경은 4주일 동안 편집국을 점거하고 각종 문서를 압수했다. 이 잡지 발행인이자 편집인이었던 루돌프 아우크슈타인과 서독군 비판 기사를 썼던 콘라트 알러스 기자 등 8명이 체포되거나 투옥됐다. 독자와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국외에서도 규탄이 잇따랐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뤘던 아데나워 총리는 결국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둔 상태에서 물러났다. 독일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전환점이 된 ‘슈피겔 사건’은 이렇게 끝났다.

1963년 3월, 청년 백남준은 자신의 첫 전시인 ‘음악의 전시-전자텔레비전’을 알리는 포스터에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에게 보내는 경의’라는 주제를 담았다. 백남준은 <슈피겔>을 지지하는 뜻으로 한국에 사는 형이 보내준 한 일간신문의 1960년 4월19일치를 이 포스터에 사용했다. 당시 이 신문은 관제언론이었는데, 4·19혁명 이전과 이후의 보도행태가 판이했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할 때 “괴물, 엘바섬 탈출”이라고 제목을 뽑았던 프랑스 신문 <모니퇴르>가 나폴레옹이 권력을 접수한 뒤에는 “황제 폐하, 어젯밤 틸릴리궁으로 귀환”이라며 표변한 것과 비슷했다. 백남준의 메시지는 권력과 언론의 긴장관계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이 결국 물러났다. 검찰을 앞세운 피디수첩에 대한 마녀사냥과 방송문화진흥회를 통한 인사개입 작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엄 사장은 노조원들에게 “건강한 엠비시가 되도록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엄 사장과 노조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엠비시가 <한국방송>(KBS)에 이어 한국의 <모니퇴르>가 되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황제 복귀는 백일천하로 끝났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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