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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보수 정권과 그 ‘적’들 / 최우성

등록 2010-03-09 22:19

최우성  금융팀장
최우성 금융팀장
1920년대 독일 사회를 휩쓴 인플레이션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당시 독일 정부는 민간의 구닥다리 인쇄기마저 죄다 강제징발하고도 늘어나는 통화수요에 맞춰 제때 화폐를 찍어내기에 버거울 정도였다. 심지어 베를린 시내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는 사이, 커피 가격이 갑절로 뛰기도 했다.

흔히 ‘돈의 값’이 계속 떨어져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일컫는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사회계층 사이에 부를 재편하는 기능을 한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부는 통상 저축자(가계)에서 정부로, 임노동자에서 기업가의 손으로 강제적으로 옮아가기 마련이다. 인플레이션이 안겨주는 고통은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법이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른다면 그 엄청난 폐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편에서 돈의 값어치는 계속 떨어지는데 다른 한편에서 물건의 값어치(물가)와 자산의 값어치(자산가격)만 계속 오른다고 치자. 적어도 라면이나 아파트가 그 자체로서 화폐가 아닌 이상, 설령 라면과 아파트를 셀 수 없이 소유한 사람조차 결국엔 돈의 가치가 무한정 떨어지는 것을 눈 뜨고 볼 수는 없다. 돈의 가치를 적정 수준으로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못 가진 자’는 물론이려니와 특히 ‘가진 자’에게는 마치 체제를 수호하는 일에 버금가는 절체절명의 과제인 셈이다.

올곧게 제 소임을 다하는 중앙은행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중앙은행의 행태는 비효율적이고 생산성이 떨어지는데다, 때론 고집불통처럼 비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앙은행 사람들이 혈통상 지독히도 외골수이고 보수적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게 단순한 허세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독립성이야말로 ‘체제 수호’의 든든한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독불장군 중앙은행은 체제를 지켜내는 일종의 필요악인 셈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후임 자리를 놓고 온갖 말들이 무성하다.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도 여럿이다. 하지만 그 모든 기준과 장점을 받아들인다손 치더라도, 현재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너무 ‘혁신적’이고 심지어 ‘진보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소 건방진 표현일지는 모르나, 뼛속 깊이 ‘보수적’이어야 할 중앙은행 총재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나대는’ 편이다.

후임 총재 앞에 놓인 경제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이후에 찾아온 ‘뉴노멀’ 체제에서 경제의 변동성은 더욱 커지고, 물가상승 압력은 과거에 견줘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일과는 무관하게 곶감 빼먹듯이 나라 재정을 끌어다 쓰는 현 정부는 훗날 ‘먹튀’ 정권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책기조를 밥 먹듯 뒤집는 것도 모자라, 버젓이 “그래서 공무원을 영혼 없는 사람들이라 하지 않느냐”며 당당하게 떠벌리는 관료들이 우글대는 세상이다. 우리 경제를 지켜낼 든든한 ‘최종수비수’가 꼭 필요한 이유다.

“짐은 은행이 지나칠 필요는 없지만 충분한 정도로 정부의 수중에 있기를 원한다.” 1805년 나폴레옹이 중앙은행 총재와 부총재를 갈아치우며 던진 한마디다. 10년 만에 찾아온 ‘보수 정권’이라는데, 행보 요란한 터프가이나 철학 없는 관료들만 득실대고, 정작 ‘보수적’인 총재 후보감이 보이지 않는 건, 마치 시계를 200년 전으로 되돌리는 코미디에 가깝다. 중앙은행을 죽이면 결국엔 ‘가진 자’, 바로 체제가 죽는 법이다.

최우성 금융팀장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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