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산업팀장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냉혹한 글로벌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경쟁자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여 거머쥔 화려한 성적표다. 삼성전자는 4조원을 훌쩍 웃도는 1분기 영업이익으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현대자동차도 1분기 중 1조1272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사상 처음 1조원 고지에 올라섰다. 사상 최대 실적 행렬에 동참한 기업들의 이름은 이 밖에도 여럿 있다. 이런 결과는 각자의 무대에서 사실상 ‘글로벌 챔피언’ 자리에 확실하게 올라선 국내 대표기업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특히나 2007~2008년 금융위기의 불씨에서 비롯된 세계적인 경기 둔화라는 최악의 조건 아래 거둔 성과이기에 그 열매는 더욱 달콤하다. 시야를 조금 더 넓혀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대략 50년 남짓한 ‘대추격 시대’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디젤, 다임러, 벤츠, 에디슨 등등 쟁쟁한 ‘발명(기술)자본가’들의 주무대였다. 산업혁명기는 제쳐두더라도, 이들이 주도했던 자본주의의 대혁신 기간을 그저 ‘남의 일’로 지켜봐야 했던 우리로서는 그저 ‘앞만 보고 달리며’ 앞선 경쟁자들을 따라잡으려 쫓아갈 도리밖에 없었다. 국가와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우리 기업들이 대추격전의 선봉에 섰고, 다행히도 우리는 가슴 뿌듯한 성공 스토리를 나눠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앞서가던 1등을 뒤쫓으며 숨가쁘게 내달려온 대추격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이즈음 우리 기업 앞엔 새로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단지 우리를 바짝 뒤쫓는 기업들과의 거리를 벌려 저만치 앞으로 내달리는 일, 말 그대로 ‘탈추격’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세상은 그간 익숙했던 모든 ‘문법’들을 빠르게 해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경영 문법, 마케팅 문법, 인사 및 조직의 문법 등 말 그대로 기존의 ‘기업 문법’ 자체가 근본적으로 도전받는 현실에 더해, 우리 기업에겐 추격자의 익숙한 옷을 벗고 개척자이자 선도자의 새 옷을 갈아입어야 할 과제가 함께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단지 경쟁자보다 앞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결코 개척자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조직, 문화, 상생협력,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 기업 자신을 둘러싼 산업생태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야말로 개척자의 이름에 진정 걸맞은 혁신이다. ‘익숙한 것’과 과감히 결별하는 상상력과, 자신의 치부와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함께 해법을 찾는 걸 주저하지 않는 지혜와 용기가 그 첫걸음인 건 물론이다. 이런 ‘스마트한’ 세상의 문턱에서 여전히 많은 기업들에서 “앞만 보고 가자” 따위의 돌격구호만이 난무하는 건 어디로 보나 난센스다. 앞만 보고 달려 성공에 이를 수 있는 건 마치 마라톤처럼 정해진 길 위를 달릴 때나 있을 법한, 대추격 시대의 낡은 유물일 뿐이다. 예컨대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텔레비전 제조업체와 경쟁을 벌여야 하고, 언론사가 연구소(싱크탱크)를 맞상대로 삼아야 하는 ‘이종간 혈투’의 세상에선 아예 자신이 발 딛고 선 길 자체를 새로 내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이다. 추격자보다 몇십 배는 더 험난할 개척자의 길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피해서는 안 될 사명이자, 진정한 명예에 이르기 위한 시험대다. 부디, 오랜 대추격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기업들에 더 크나큰 영광 있으라! 최우성 산업팀장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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