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에 갔다. 그로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모습이지만, 북한이 천안함 참사를 일으켰다고 보는 쪽에서는 그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중국에 매달린다고 생각할 법하다. 어떤 경우든 북-중 정상회담에서 천안함 참사가 주된 의제가 될 가능성은 적다. 두 나라 사이에는 그보다 더 절실한 사안이 있다. 6자회담 재개와 경협 등 정치·경제적 협력 강화가 그것이다. 양쪽이 서로의 요구를 절충하면 그 영향은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로 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모든 게 천안함 참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분위기다. 참사가 북한 소행으로 확실하게 밝혀졌다면 또 모르겠다. 그렇지 않은데도 북한공격설을 전제로 대내외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 태도는 타당성은 둘째 치고라도 잠재적 위험이 크다. 여기에 정치적 의도까지 작용한다면 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침몰한 것은 천안함만이 아니다. 허술한 대응과 은폐하는 듯한 태도 등으로 군과 정부가 국민 신뢰를 잃은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기혁신을 꾀한다면 신뢰는 되살아날 수 있다. 원인이 뭐든 희생자 가족의 눈물은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남북관계가 함께 침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부는 북한이 금강산내 모든 남쪽 시설을 몰수·동결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음에도 사실상 무시·방관했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경협 사업인 개성공단마저 앞날이 불투명하다. 앞으로는 상생·공영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급변사태를 기대하며 대결과 압박을 추구해온 대북정책이 거의 종착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때맞춰 일어난 천안함 참사가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주는 듯하지만, 남북관계 침몰은 이미 고립된 북쪽보다는 챙겨야 할 게 많은 남쪽에 더 많은 피해를 줄 것이다. ‘이명박식 실용주의’ 또한 침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른바 중도·실용을 내세워왔다. 보수세력의 여러 갈래 가운데서도 실리 추구를 중시하는 경제적 보수파를 주된 기반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냉전 구조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완고한 기득권층으로 자리잡은 안보 보수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중도·실용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그래야 한다. 임기 초반 촛불집회에 놀라 사회적 영역에서 군사정권식 권위주의로 돌아간 것과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런데 천안함 참사 이후 이 대통령은 앞장서서 강경 안보 보수파 행세를 한다. 초기에만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였을 뿐 이후 모든 안보몰이의 중심에 그가 있다. 모든 침몰이 똑같지는 않다. 천안함 침몰은 갑자기 주어졌지만 다른 침몰은 의식적 선택을 통해 귀결된 것이다. 따라서 그 파장과 대책도 다르다. 천안함 참사는 객관적인 조사 결과 북한이 관여했다면 그에 맞게, 아니면 아닌 대로 조처를 취하면 된다. 물론 어느 쪽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은 구분해야 한다. 허점이 많은 틀을 짜놓고 다른 나라를 무작정 끌어들이려 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그래서 냉정한 태도가 중요하다.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한 우리나라의 발언권은 이미 취약하다. 남북관계 침몰로 모든 대북 지렛대를 잃고 보니 미국과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중국은 균형외교라는 이름으로 이런 상태를 즐길 것이고, 핵문제를 풀어야 하는 미국은 결국 중국과 보조를 맞출 것이다. 국내 분위기와 국제환경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는 구도다. 김정일 방중의 결과와는 별개로 천안함 참사는 북쪽보다 남쪽에 더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