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기자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부르는 미국에서 지난 9일은 조금 더 특별한 어머니날이었다. 꼭 50년 전인 1960년 이날,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세계 최초로 경구피임약 에노비드(Enovid)를 승인했다. 하지만 “우리의 윤리관은 이번 승인과 아무 상관없다”고 식품의약청이 단서를 달 정도로, 당시 피임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피임 광고가 처음 미국에 등장한 것은 놀랍게도 1992년에 이르러서다. 이 약의 탄생엔 간호사이자 산아제한 운동가였던 마거릿 생어(1883~1966)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어머니는 18번의 임신과 11번의 출산으로 평생을 보내다가 폐결핵과 자궁경부암으로 숨졌다. 생어는 이미 1912년 쓴 신문칼럼에서 원치 않는 임신과 위험한 낙태로 고통받는 가난한 여성들을 위한 ‘마법의 알약’을 꿈꾼다. 그는 1950년대 내분비학자 그레고리 핑커스와 존 록의 연구를 고무했고, 여성참정권 운동가 캐서린 덱스터 매코믹의 재정적 후원을 받도록 연결해줬다. 부작용 및 도덕적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이 약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는 엄청났다. 원치 않은 임신에서 벗어난 미국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은 가파르게 상승했고, 1970년대 34%였던 여성의 고교 중퇴율은 2008년 7%로 떨어졌다. 이제 전세계 1억명의 여성이 피임뿐 아니라 월경전증후군을 완화시키거나 월경을 멈추게 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 약을 복용한다. 출산율 저하가 심각해지면서 그 주범이라는 비난도 동시에 받는다. 하지만 미국의 배우 겸 라디오 진행자인 페이스 샐리는 최근 <시비에스>(CBS) 인터넷판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이 약이 아이들 수를 줄였을지는 모르지만, 훨씬 좋은 엄마들을 만들어냈다”고. 출산은 여성의 숙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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