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기자
장정일의 소설 <구월의 이틀>(2009)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우익청년 탄생기다. 광주 태생의 ‘금’과 부산에서 태어난 ‘은’이라는 두 청년의 엇갈린 운명 속에서, 포스트뉴라이트 청년 ‘은’의 의식 형성 과정을 포착한다. 일제와 독재에 부역한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우익(올드라이트)과 좌파에 대한 원한과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신우익(뉴라이트)을 뛰어넘는 당당한 우파의 등장! 문학과 미술에 심취했던 유약한 청년 ‘은’은 어느덧 “강한 것은 선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신념을 설파하는 논객으로 성장한다. 노무현을 비롯한 실명 및 준실명의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이 작품은 한국 문학계에서 보기 드문 본격 정치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은’은 허구의 인물일 뿐, 현실로 돌아오면 나이가 많고 적은 것 말고는 차이가 없는 구우익과 신우익의 세상이다. 소설에서 구우익의 태두로 나오는 거북(拒北)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따르는 무리를 향해 ‘빨갱이’와 같은 인장을 찍어대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에게 논리가 없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저 인장들은 그들과 더 말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단을 보여주는 것들이지. (중략)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총량 속에서 우파가 쓸 수 있는 지식의 총량은 10%도 안 돼. 아니 5%도 안 될 거야.” 영민한 제자 ‘은’은 맞장구친다. “5%의 논리로는 절대 95%의 논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무리를 이기는 방법은 그냥 지금까지 해온 대로 ‘빨갱이’라느니 ‘지상낙원 북한에나 가라’는 수법을 계속 쓰는 겁니다.” 촛불집회를 왜곡한 <조선일보>,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실과 논리, 상식 따위 개의치 말고, 무조건 낙인을 찍고 우기면 이긴다’는 거북선생의 무식한 전략을 충실히 따르는 우파 모범생들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