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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기업, ‘사회공헌’ 그만하라 / 최우성

등록 2010-05-16 18:11수정 2010-05-16 20:01

최우성 산업팀장
최우성 산업팀장




“기업이 할 일은 바로 돈을 버는 일이다.”(Business of the business is business.) 몇 해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룬 스페셜리포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1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저명한 경제주간지가 이 주제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업의 사명은 오로지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기업이 사회에 안겨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정통 ‘시장주의자’의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본연의 사명인 영리추구 이외의 가치를 경영 판단에 끌어들이는 것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그 몫(배당)을 돌려줘야 하는 의무를 소홀히 하는 행위이자, 비극을 부를 불행의 씨앗이다. 실제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역시 영리기관인 금융회사들이 저소득층을 배려한다는 그릇된(!) 가치에 휘둘려 빚어진 재앙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경영활동에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기업활동의 성과를 더욱 기름지게 만드는 실마리라는 반론이 으레 따른다. 이러다 보니, 현실에선 적절한 타협이 이뤄진 게 사실이다. 나라 안팎의 주요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사회공헌’에 뛰어들거나, 기업의 사회책임을 하나의 전략적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기 시작한 게 그 예다.

하지만 이참에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다시금 근본적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곰팡내 나는 ‘주류’ 경제학 교과서의 낯익은 명제를 뜯어고치는 일이며, 미래의 세상을 떠받쳐줄 패러다임으로 리모델링하는 일이다. 그 출발점은 바로 생산함수다. Y=f(K, L). 경제학 교과서 앞머리엔 으레 낯익은 공식 하나가 자리를 꿰차고 있다. 생산량은 자본(K)과 노동(L)이라는 투입물에 좌우된다는 뜻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 공식 속에는 기업활동의 결실은 오로지 두 가지 투입변수인 자본과 노동(력)의 소유자에게만 돌아가야 한다는, 주류 패러다임을 떠받드는 핵심 전제가 깔려 있다.

즉 돈을 꿔준 채권자(금융기관)와 자본을 투자한 주주에게 돌아가는 이자배당과 이윤배당, 그리고 생산과정에서 ‘몸으로 때운’ 노동(력)에 돌아갈 임금배당이 아니고선, 그 결실을 나눠가질 아무런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셈이다. 사회공헌이란, 기껏해야 분별있고 착한 기업의 ‘시혜’이거나, 아니면 ‘형편이 되는’ 기업이 보여줄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이벤트일 뿐이다.

과연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부는 단지 자본과 노동만을 쏟아부어 얻어지는 게 아니다. 때론 사회 구성원 전체를 아우르는 ‘집단지성’이, 때론 해당 사회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공공재’가 그 사회의 부를 늘리는 데 더욱 중요한 핵심 구실을 하는 세상이다. 생산활동의 결실이 자본과 노동(력) 소유자(제공자)뿐 아니라, 응당 사회 전반으로 골고루 돌아가야 할 정당하고도 당연한 이유가 있는 건 물론이다. 이를테면 Y=f(K, L, S)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 생산함수를 다시 써야 하는 순간인 셈이다.

사회에도 엄연히 제3의 투입변수 지위를 인정한다면, 이제 남은 일은 사회라는 투입변수에 돌아갈 몫을 규범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분명하게 뿌리내리는 일이다. 이자배당과 이윤배당, 그리고 임금배당과 마찬가지로, ‘사회배당’이라는 당당한 이름을 달고서 말이다. 사회공헌은 사회배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21세기 세상에서 사회배당은 피할 수 없는 기업의 의무이자, 기업에 도움을 준 사회가 누릴 엄연한 권리이다.


최우성 산업팀장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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