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논설위원
천안함 사건은 공동체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다. 따라서 사건의 원인과 대응책을 놓고 광범위한 공론의 장이 펼쳐져야 했다. 관련된 정보들은 충분히 검증되고 다양한 견해가 활발히 제출되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철저하게 일방적 여론통제를 꾀했다. 사건 직후 청와대는 “북한의 소행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야당과 언론에 설명했다. 기류는 얼마 가지 않아 바뀌었다. 정부는 공식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북한 도발설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여론몰이를 펼쳤다. 보수언론은 조사경과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책임자 문책을 주장하는 사람한테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며 색깔론 공격을 퍼부었다. 정부는 극히 일부 단서만 선별해 공개하고 정보를 통제했다. 정부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차례로 고소당해 ‘공안사범’이 됐다. 박선원 전 청와대 비서관,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그러하며,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발언했음에도 예외를 허용받지 못했다. 정부는 5월20일 합동조사단 발표를 강행했다. 국방부는 ‘결정적 증거’라는 어뢰 프로펠러 부품을 발표 닷새 전인 5월15일에 건졌다. 그런데 정부는 5월20일이라는 발표 일정을 어뢰 부품을 수거하기 이전에 이미 언론에 예고했다. ‘결정적 증거’가 있든 없든 정부는 동일한 결론을 ‘그 시점’에 발표하려 하고 있었다. 과학적 조사의 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엿보였다. 6·2 지방선거일로부터 역산해 10여일 전에 큰 ‘꺼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어 미-중 전략대화가 열리고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찾았으며, 한-중-일 정상회담은 그제 열렸다. 선거와 정치를 기준으로 여러 일정이 배합되고 있었다. 정부가 심하게 정보를 통제했기 때문에, 야당이라도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며 조사경과를 검증해야 했다. 선거가 아니라 안보를 위해 그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야당은 처음부터 문제를 직시하길 피했다. 민주당의 천안함 진상조사특위는 이름뿐이었다. 함체의 절단면 상태, 생존자와 주검의 상처가 폭발을 뒷받침하는 것이냐를 놓고 한동안 숱한 의문이 제기됐지만, 민주당 국회의원 가운데 평택 2함대사령부를 찾아 함체를 확인하거나 생존자를 면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권과 보수언론의 북풍 여론몰이가 한창이던 무렵 한 야당 인사는 “이슈가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린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대응했다가 공격당하는 게 불편하기도 하려니와 논쟁이 커져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민주당에도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있었다.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의원은 사건 초기에 “미국이 9·11테러 뒤 했던 것처럼 여야 공동추천으로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사건 조사를 맡기자”고 제안했다. 5월20일 정부 발표 뒤에 그는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도 참여하는 합동조사단 형식으로 ‘천안함 조사결과’를 검증하자”고 제안했다. 조사결과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자는 합리적인 문제제기로, 야당의 대항담론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당 차원의 제안으로 채택되어 힘이 실리지 않고 묻혀버렸다. 민주당은 천안함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데 실패했다. 10년간 집권했던 세력이라면 안보 문제라고 주눅들 게 없을 터인데 뜻밖이었다. 사람은 ‘인지적 구두쇠’이다. 사람들은 복잡한 문제를 일일이 생각하기보다는 경쟁하는 담론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여 내면화한다. 정치여론의 주도권을 다투는 무대에서 지배담론에 맞서는 대항담론이 요구받는 이유이다. 그런데 지난 두 달 정권이 천안함 이슈를 난폭하게 밀어붙여온 반면에 야당은 논쟁의 무대에서 스스로 퇴장했다. 그 결과 함선 경계에 실패해 46명의 장병을 맥없이 숨지게 한 정권은 지지율 강세를 구가하면서 내일의 선거를 맞고 있고, 야당은 짓눌려 있다. 민주주의를 침몰시킬 수 있는 위험신호이다. 박창식 논설위원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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