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기자
냉소주의는 이 시대의 기본 감성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냉소적 이성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짓을 한다.”(<냉소적 이성 비판>) 이 공식이 겉보기처럼 자명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 이는 슬라보이 지제크다. 그는 슬로터다이크의 말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무엇을 믿는지 모르기 때문이다.”(<전체주의가 어쨌다구?>) 산타클로스를 믿지는 않지만 해마다 12월만 되면 크리스마스트리를 ‘구매’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믿기는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방향은 다르지만 유사한 행위다. 전체에 대한 통찰 없이 적당히 타협하거나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맹이 없는 ‘문화’를 소비한다. 카페인이 사라진 커피를 마시고 저타르 담배를 피운다. 몸에 좋지 않은 카페인과 타르야말로 문화의 핵심이지만, 그 핵심을 제거하곤 그것이 웰빙이라고 믿는다. 지제크는 이럴 때 발생하는 거대한 위선을 ‘구멍마개’라고 부른다. 생각의 틈새를 사정없이 막아버리는. 검찰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대해 합조단과 다른 견해를 내놓은 민·군 합동조사단 조사위원을 소환조사하고, 선관위는 후보자들이 너도나도 공약으로 내거는 ‘무상급식’에 대한 토론을 강제로 틀어막고 있다. 이것은 촛불집회 이후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구멍마개다. 문민정부 이후 유례없는 냉소와 강압 속에서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이럴 때 지제크라면 다음과 같이 ‘저속하게’ 질문할 것이다. “그러니까, 빙빙 돌리지 말고 까놓고 말해 봐. 당신은 민주주의를 믿어 안 믿어?”(<죽은 신을 위하여>) 손을 움직이지 않고 구멍마개를 치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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