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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안보리와 확성기 / 강태호

등록 2010-06-20 19:04수정 2010-06-21 09:56

강태호 국제부문 기자
강태호 국제부문 기자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외교는 유엔 안보리에 갇혀버렸다. 중·러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한 안보리 논의는 천안함 사태의 출구가 될 수 없다.

현재로선 안보리가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천안함 침몰을 인정할 것 같지가 않다. 제재 결의는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의장성명에 북을 규탄하는 내용이 담기지는 않을 것이다. 6월 한달 동안 안보리 의장을 맡은 클로드 헬러 멕시코 대사의 말이 그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는 14일 천안함 ‘침몰’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을 가져온 사건”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모두에게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떤 행동도 자제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정부는 내심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한달 임기로 순번제로 돌아가는 안보리 의장은 실권이 없다. 그러나 유엔 대표부의 한 관계자가 말했듯이 의장이 회의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의제 설정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또 앞으로 안보리가 어떤 협의과정을 거칠 것인지, 그리고 전체회의에서 발언 기회를 주거나 엇갈린 의견들을 취합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의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있다.

정부는 이제 출구는커녕 퇴로를 위한 명분을 찾아야 할 판이다. 안보리에 천안함 조사결과의 의문을 제기한 참여연대의 서한을 두고 이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치졸한 대응은 그만큼 처지가 절박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무시하면 됐을 것을 참여연대의 입을 틀어막으려다 보니 사람들은 참여연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스스로는 참여연대의 힘을 인정하는 꼴이 돼버리고 말았다.

헬러 안보리 의장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안보리가 의장성명이든 언론발표문이든 불개입적인 자세를 보이거나 중립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이제 역풍이 우려된다. 마치 검찰이 결정적 증거물을 찾았다며 살인 용의자를 기소하기 위해 영장을 청구했는데 재판에 가기도 전에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혐의를 입증하려면 재조사가 필요하고 증거도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 증거라는 것이 갈수록 증거력을 의심받고 있다. 중·러의 태도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안보리가 북에 의한 천안함 공격을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북에 ‘면죄부’를 준다 한들 제대로 항변하기가 어렵게 됐다.

국방부는 군사분계선 일대 11곳에 대북 심리전용 확성기를 설치했다. 군은 안보리 조처가 끝나면 확성기 방송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다. 북한에 강력한 무력응징 의지를 보여주려던 서해에서의 한-미 합동군사훈련도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유엔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우선 지켜보고, 그 이후에 다음 조처를 생각하고 싶다”고 말해 연기됐다. 애초 이는 안보리의 결정을 근거로 북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실질적 조처를 취하겠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가 보기에도 지금 안보리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못해 실망스럽다. 한·미는 중·러가 버티는 한 안보리는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하고 확성기 방송과 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중대보도를 통해 남쪽의 확성기 방송을 ‘특대형 도발행위’로 규정하고 ‘직접적인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이제 북의 협박에 굴복할 수 없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천안함의 출구전략 대신 안보리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출구전략으로도 고려될 수 있다. 확성기 방송으로 북의 도발을 유도해 응징하겠다는 보복심리도 깔려 있을지 모른다. 북은 서울 불바다까지 공언하고 있다. 이 정부가 무모하고 위험한 유혹에 빠져들까 우려스럽다.

강태호 국제부문 기자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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