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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최고불통자’ 대통령

등록 2010-06-22 22:05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난데없이 ‘로봇물고기’가 다시 등장했다. 애초 1m가 넘는 크기의 로봇물고기를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45㎝로 줄이는 대신 3~5마리가 편대를 이루도록 기술개발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로봇물고기를 수질검사용으로 4대강에 투입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어디에서 연구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청와대 참모들이 갑자기 로봇물고기 홍보에 나선 데는 이 대통령의 ‘시이오(CEO)형 리더십’을 부각시키려는 충정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6·2 지방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는 바뀐 게 거의 없다. 국민적 심판 대상이었던 4대강 사업에서는 오히려 속도전을 펼치고 있고, 어제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수정안이 부결된 세종시 문제에서도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선거에서 “대통령 지지도에 비해 표가 안 나와” “패배라고 느꼈지만 대패는 아니다”라는 정운찬 국무총리의 발언은 대통령만 바라보는 정부 고위인사들의 기본인식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 그 이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의 핵심이다. 선거 이후 나온 여론조사들을 보면 국민들은 하나같이 ‘화합형 리더십’을 요구한다. 애초 ‘다소 비도덕적이더라도 유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이 대통령을 주시해온 국민들이 이제 그의 리더십 자체에 본격적으로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 남북관계가 당연히 그 한가운데에 있다.

리더십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뉜다. 권위적·방임적·참여적 리더십이 그것이다. 권위적 리더십에서는 모든 의사결정 권력이 극소수에게 집중된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유형이다. 반면 방임적 리더십은 권한의 분산과 자율조정을 특징으로 한다. 중앙집권제가 이어져온 우리나라에선 접하기가 쉽지 않은 유형이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집단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참여적(민주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화합형 리더십도 비슷한 개념이다. 실무적인 시이오형 리더십은 세 리더십의 어느 것과도 결합할 수 있는 하위 형태다.

참여적 리더십이 성립하려면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지도자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지도자 아래에서 참여적 의사결정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참모의 존재도 그에 못잖게 중요하다. 의견을 폭넓게 들어보려 해도 가까이에 사람이 없으면 내용을 채우기가 어렵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도 시간이 지나면 권위적으로 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의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는 참모들이 득세하기가 쉽다. 지금의 청와대가 바로 그렇다. 국민은 이번 선거를 ‘이명박 정부 심판’으로 생각했는데도 청와대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는 현상이 그래서 생긴다.

이 대통령이 참여적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는 반드시 해야 한다. 하나는 참모진과 내각의 전면 개편이다. “길 가는 세명 중에 한 사람이 미혹됐다 해도 목적지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미혹된 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미혹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다.” <장자> 외편에 나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국정기조의 분명한 수정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 ‘세종시 수정 좌초에다 4대강 사업까지 포기하면 뭐가 남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온 길에 얽매이지 않고 빨리 새 길을 찾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미국 사상 최악의 대통령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받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조차 임기 2년을 남기고 중간선거에서 지자 국정기조를 크게 바꾸지 않았던가.

대통령은 평시에나 전시에나 나라의 최고지도자이자 최고행동자여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최고소통자가 돼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 대통령의 모습은 최고불통자일 뿐이다. 이대로 계속 갈 건가.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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