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한국전쟁 60주년에 맞은, 전후 최대의 집단군인참사인 천안함 사건의 파장은, 사태 자체보다 훨씬 크고 깊고 넓게 미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남북관계와 한국문제를 넘어 동아시아에서 미-중 대립의 격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제문제인 한반도 문제는 사태가 커질수록 한국의 발언권이 약해지고 강대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천안함 사태는 세계사와 미국 외교의 9·11과 같은 위상을 가지려는가? 그건 안 된다.
천안함 사건이 과연 한국으로서 제일 무역상대 중국과의 중대 긴장을 불사하고, 한미-북중 대결구도를 복원하며, 동아시아 화해·협력·평화의 바다로 나아가던 황해와 동해를 긴장과 대결의 바다로 만들고, 한국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협력의 틀 대신 냉전적 양자주의로 회귀하며, 힘겹게 남북 등거리까지 끌어온 중·러를 다시 북한 편향으로 밀어넣고, 국제기구에서 외교 패배를 반복하게 하는…이토록 결정적인 전환점일 수 있는가?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거부할 수 없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는 일이다. 천안함 사건이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증거에 의해 북한 소행으로 판명되었다면 남한과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오히려 절호의 기회였다. 국제사회는 강경 대북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중국의 불가피한 한국 편듦과 더불어 북한은 치명적 상황에 직면할 것이었다.
북핵문제 역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었다. 더욱이 유엔헌장에 비추어 영토침범과 평화파괴 행위는 용납될 수 없었다. 최근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유엔은 안보리 ‘결의’ 1695호·1718호·1874호를 통해 연속으로 북한 제재를 결정하였다. 관건은 명백한 ‘사실’과 ‘증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결의’는 고사하고 ‘의장성명’조차 공격 주체가 생략된 채 채택됐다.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금강산 피격사건 때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 패배에 이은, 피해를 당한 쪽이 패배하는, 건국 이래 유례없는 외교 실패였다.
대내·대북 차원에서는 엄정성과 현실성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대내 조처의 으뜸은 추상같은 책임과 처벌을 통한 국민통합과 안보의식 제고이다. 박정희 시기에는 국군 46명 참사는 고사하고 간첩침투만 드러나도 관할지역 군·정보 관계자는 엄한 문책을 받았다. 그러나 현 정부는 국방비 감축, 병역미필자의 국가고위직 다수 임명, 참사 처벌과 책임 회피로 안보해이를 반복하면서 거꾸로 국민의 안보의식 해이를 질타한다.
돌발사태에 직면했을 때 현명한 북한 관리 방식은 정면대응·보복하지 않고 한발 떼어놓고 견인해 나가는 것이다. 1·21사태, 랑군사태, 대한항공(KAL)기 피격 이후 남한은 분노가 극에 달했으나 즉각 대응·보복하지 않고 외려 8·15평화통일선언, 6·23선언과 7·4남북공동선언(박정희), 남북교류와 접촉 증대(전두환), 8·8선언과 북방정책(노태우)으로 북한을 견인·제압해갔다. 연속적 폭력행사에도 군사대결이 빗나가자 북한은 나가떨어졌고, 남북관계는 대역전으로 귀결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로부터 ‘천안함 이후’를 위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끝으로는 천안함 사건의 국제적 손익비용을 면밀하게 비교해야 한다. 먼저 한-미 관계에서 군사밀착의 대가로 미국이 강력하게 요구할 자유무역협정(FTA) 수정, 시장개방, 이란 제재 동참, 미-중 갈등 심화시의 택일상황에 대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또 한-미 군사밀착의 국제비용, 즉 중국·러시아·북한·이란…과의 무역·식량·자원·안보·에너지수급…영역에서 상쇄될 이익의 크기 역시 필히 타산해야 한다. 특히 중국의 북한 편향으로 북핵 해결, 통일문제에서의 핵심 상의·매개국가 역할 요청을 포기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도 ‘작은’ 천안함 사건이 이미 예진했듯, 한국이 미·중 ‘거대’ 패권경쟁의 진앙으로 전락해선 결코 안 된다. 자초해선 더더욱 안 된다. 중-일 대결 진앙의 결과가 망국과 식민이었고, 미-소 대결 진앙의 결과가 분단과 한국전쟁이었음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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