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국제뉴스팀장
지난 7월 말부터 일본의 여름을 뒤흔든 ‘고령자 행방불명’ 사건은 ‘노인괴담’을 방불케 한다. 시발점이 된, 살아있으면 111살 됐을 할아버지가 사실 30년 전 숨져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는 이야기부터가 그랬다. 가족들이 연금을 계속 수령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범죄의 냄새까지 풍긴다는 보도들도 잇따랐다.
도쿄 오타구의 미쓰이시 기쿠에 할머니는 살아있으면 104살이 됐을 터였다. 이 할머니의 맏아들은 어머니가 2001년 숨진 뒤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주검을 옷장에 넣어둔 채 3년간 연금을 받았다. 다른 구로 이사갈 땐 주검을 배낭에 넣어 옮겼다. 영락없는 ‘패륜아의 연금사기’ 행각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엔 이런 측면도 있다. 실업자였던 맏아들은 날마다 홀로 어머니를 간병하며 기록을 남겼다. 수첩엔 어머니가 그날 먹은 음식의 양, 병세 등이 적혀 있다. 류머티즘이 악화된 어머니는 “아들의 부담을 우려해” 병원에 가자는 걸 거부했다.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아들은 “장례비용이 없었다”며 넉달에 13만엔(약 180만원)씩 3년간 받았던 연금이 “생활비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이사 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아들은 더는 구청에 연금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의 집 아버지 위패 옆에는 어머니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 아들의 행동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식으로서 부모님 장례식조차 치를 수 없는 빈곤의 무서움을 빼놓으면 이 사건의 반쪽을 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그도 ‘마음의 지옥’을 갖고 살았을 게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두려움에 빠지고…. 가족 해체의 상징이 된 고령자 행방불명 사건들엔 국가가 주도하고 가족과 회사가 보완하는 형태로 지속돼왔던 일본 사회안전망의 급속한 와해가 깔려 있다.
꼼꼼하기로 정평이 난 일본의 행정에 구멍이 있었음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파악된 전국 100살 이상 노인 가운데 소재불명자는 400여명 정도다. 몇몇 ‘괴담급’ 사건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락두절인 상태일 뿐이다. 집을 나가 이름을 바꾸고 노숙생활을 하는 이도 상당수인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정보 보호를 중시하는 사회에선 개개인의 생활을 직접 확인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주민등록번호에 전 국민의 지문까지 보관하는 한국에서도 실종자 찾기가 간단치 않다.
설사 정부가 전 국민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해도 사회보장 시스템의 구멍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기초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빈곤층 노인의 70% 이상이 ‘없는 것만 못한’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게 탈락 이유였다. 일본도 사정은 비슷해, 메이지가쿠인대학 가와이 가쓰요시 교수의 조사에선 ‘급할 때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답변이 비교적 여유 있는 홀몸노인에선 14%인 데 반해, 가난한 홀몸노인에선 52%에 이른다. 그로테스크한 일본의 풍경이 초고령사회로 급이행중인 한국에서도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더 우려할 만한 대목은 선정적 보도들이 고령자들에 대한 젊은층의 적개심을 부추기는 토양이 된다는 점이다. <만화 혐한류>의 작가 야마노 샤린은 인기작 <젊은이 노예시대>에서 젊은층의 등골을 빼먹는 고령층을 ‘몬스터 실버’라고 맹비난한다. 라이브도어 사장이었던 호리에 다카후미 같은 이는 “고령층 우대보다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며 연금을 폐지해 모든 국민에게 나눠주는 제도의 도입을 주장한다. 와해되는 사회안전망과 빈곤 속에서 ‘세대간 전쟁’의 싹이 자란다. 노인괴담보다 그게 나는 더 무섭다.
김영희 국제뉴스팀장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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