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기자
몽(夢)자류 소설은 꿈속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 깨어보니 허무한 꿈이더라는 식의 이야기다. 유배중이던 서포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구운몽>이 대표적이다. 아홉개의 구름은 성실한 불제자였던 성진이 꿈속에서 환생한 양소유와 그가 거느리게 되는 2처 6첩을 상징한다.
중국 청나라의 조설근이 쓴 <홍루몽>은 가(賈)씨라는 귀족 가문이 사치와 방탕으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홍루(紅樓)는 여자들의 처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인들처럼, 중국에는 ‘홍루몽은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고전소설이다.
이문구가 서른살에 발표한 <장한몽>은 몽자류 소설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주의적이다. 1960년대 서울 마포의 공동묘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통해, 이승은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라는 진실을 역설한다. 실제로 작가는 스물세살의 나이에 공동묘지에서 생활비를 벌었다.
황석영의 <강남몽>은 일제 때부터 삼풍백화점 붕괴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강남 땅부자들의 형성과정을 보여준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상류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현실 세계가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주는 <홍루몽>의 주제의식을 따르고 있는데, 묘사 방식은 <장한몽>의 준엄한 사실주의에 가깝다.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일제 밀정이 해방 후 미군 정보부(CIC)와 경찰·군인으로 살아남는 과정, 북창동 룸살롱을 중심으로 한 화류계 여성들, 조폭들의 쟁투, 부동산 투기업자들의 협잡과 알력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노후 대비를 위해 쪽방촌에 투기한 장관 후보자, 위장전입과 위장취업을 밥먹듯 했던 장관 후보자, 최저생계비로 생활했다는 총리 후보 등은 ‘강남몽 시즌 2’의 등장인물들이 아닐는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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