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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천안함, 남북관계, 6자회담

등록 2010-09-14 20:38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지 거의 반년 만에 정부의 최종 조사결과 보고서가 공개됐다. 하지만 증거는 부족하고 의혹은 여전하다. ‘확실한 것은 천안함 침몰지점 부근에서 북한제로 보이는 어뢰 추진체가 발견된 것뿐’이라는 말이 그렇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정말 북한 소행일 가능성이 지난 5월 조사 중간발표 당시 70% 정도였다면 이제는 더 낮아진 듯한 느낌마저 든다.

천안함 침몰의 진상이 무엇이든 이미 국제사회의 큰 관심사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더 끌고가려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는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처음부터 이 사건이 한반도 정세의 주된 변수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미국 또한 천안함 국면을 마무리하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고유 의제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사실 애초부터 천안함 사건을 국제적 사안으로 본 나라는 별로 없었다.

우리나라는 6자회담 재개 노력에서도 뒤처져 있다.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와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관련국 순방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발목잡기와 귀동냥에 그쳤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과 미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 임기가 절반을 지나는 동안 본격적인 핵 협상이 한 차례도 없었다는 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지금 협상을 시작하지 않으면 과거 여러 차례 나타났듯이 ‘임기말 불완전한 합의에 이은 다음 정권의 무효화’라는 공식이 되풀이되기 쉽다. 6자회담보다 더 나은 틀이 없는 이상 회담 재개를 늦출 이유는 없다.

북한 내부 상황도 핵 협상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44년 만에 열리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후계체제 가시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렇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갑자기 새 지도자로 등장할 가능성은 적다. 김 위원장이 권력을 최종적으로 장악하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듯이 후계체제 구축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급변사태 발생 가능성과 연관시키려 해서는 모든 일이 꼬인다. 그보다는 북한 정권에 안정적인 대외관계가 필요하게 된 사실이 더 중요하다. 북한이 꾸준히 남북관계와 대미관계 개선을 꾀하는 까닭이다. 북한에 안보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핵을 폐기하도록 하는 6자회담의 기본틀은 과거 어느 때보다 잘 작동할 수 있다.

북한은 최근 중국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지난달 하순 중국 방문 이후 나타나는 활발한 경협 움직임은 이전과 차원을 달리한다. 창지투 개방선도구 계획에 힘이 붙은 것은 물론이고, 과거 신의주특구 실패 경험을 살려 새 경제특구를 시도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동북지역 진흥과 동해 진출을 바라는 중국과, 중국의존식 개혁모델 외에는 대안이 없는 북한의 이해관계는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이런 정세변화에 완전히 무심한 것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러시아 방송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한 전향적 조처를 취한다면 제2 개성공단을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북-중 경협 강화를 의식한 듯한 발언이다. 정부는 남북관계에서도 제한적 쌀 지원과 개성공단 체류인원 회복 등 과거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전술적 대응으로는 남북관계의 틀을 바꿀 수도 없고 핵 문제 등 한반도 관련 사안 논의에서 주도적 구실을 할 수도 없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미 족쇄가 돼버린 기존 대북정책이다. 시작부터 현실성이 없었던 비핵·개방·3000 정책에 계속 매달려서는 운신의 폭이 커질 수가 없다. 이전 남북 합의를 존중하는 것도 필수다. 예를 들어 제2 개성공단을 만들려면 이미 비슷한 내용이 포함된 10·4 정상선언을 이행하면 된다. 남북 정상회담과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서도 전향적인 발상이 요구된다.

지금 한반도에는 큰 전략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가 차근차근 만들어지고 있다. 오는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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