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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천안함 보고서, 그리고 ‘가설’과 ‘진실’

등록 2010-09-23 22:17수정 2010-09-24 14:32

김보근 스페셜콘텐츠부장
김보근 스페셜콘텐츠부장
두려움이 일어났다. 지난 13일 국방부가 ‘천안함 최종보고서’를 발표한 뒤부터다. 무엇보다 증거 능력이 빈약한 하나의 ‘가설’을 ‘진실’이라 주장하는 국방부의 태도 탓이다.

국방부는 최종보고서에서 “북한 잠수정이 중어뢰로 수중폭발을 일으켜 지난 3월26일 천안함을 격침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봐도 ‘북한 어뢰설’로 불릴 이 가설이 진실로 확정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가설이 진실이 되려면 ①북한 잠수정이 ②중어뢰로 ③수중폭발을 일으켜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먼저 ③번부터 살펴보자. 이때 국방부는 수중폭발 때 필수적인 100~200m 높이의 물기둥을 증명해야 한다. 보고서는 28쪽에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 동안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불빛을 관측했다”며 이를 증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는 ‘조작’에 가깝다. 그 초병은 자술서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백색 섬광은 물기둥이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섬광의 방향도 천안함과 동떨어진 곳이다. 물기둥 관련 증언이 전혀 없다 보니 이런 억지를 부린 것일 테지만, 이는 보고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만 높일 뿐이다.

②번과 관련한 내용도 부실하다. 이를 입증하려면 우선 사건 발생 50일 만인 지난 5월15일쌍끌이어선이 건져 올린 어뢰추진체의 부식 정도가 2개월쯤 된 것임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애초 너무 녹이 슬어 천안함과 무관하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음에도, 국방부는 5월20일 “맨눈으로 보니 부식 상태가 2개월 정도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국방부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부식 시기를 6월 말까지 밝히겠다고 했지만, 최종보고서에는 관련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북한 어뢰의 폭발력은 티엔티(TNT) 350~500㎏ 정도인데 당시 감지된 지진파는 고작 티엔티 140~260㎏ 규모에 불과한 점, 폭약 성분이 어뢰추진체에서는 검출되지 않은 점 등도 ②번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걸 망설이게 한다.

①번과 관련해 국방부는 5월20일 어뢰를 쏜 주체로 ‘북한이 새로 개발한 연어급 잠수정’을 지목했다. 하지만 최종보고서엔 이 ‘신제품’을 발사 주체로 명시하지 않았다. ‘신제품’이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쯤 되면 북한 어뢰설은 아직 가설이라고 봐야 한다. 흔히 한 사회가 가설을 받아들이려면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를 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이런 모순투성이 가설을 진실로 통용시키고자 한다. 국방부는 이미 지난 8월 말 교육과학기술부에 공문을 보내, 학생들이 천안함을 견학할 수 있도록 홍보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 평택 제2함대에 있는 천안함을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옮겨 홍보를 강화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국방부는 그 홍보의 현장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어뢰설’이란 가설을 마치 진실인 양 설명할 것이다.


이런 우격다짐은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가설을 진실로 인정하는 우리 사회의 수용체계를 크게 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유신과 전두환 독재 시절이 이를 증명한다. 당시 국민들은 빈약한 가설 혹은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받자, 정부 발표를 믿지 않음으로써 대응했다. 정부가 진실이라고 발표하는 것이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의 공식발표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이른바 ‘유비통신’이 범람했다. 이는 결국 국가의 발전 동력을 갉아먹는다. 그런 불신시대의 재현, 이것이 국방부의 천안함 발표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의 정체다.

한가위 연휴 뒤 본격 활동에 들어가는 국회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 국회가 국정조사 활동을 통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가설과 진실을 구별함으로써, 그런 불신시대의 재현을 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번 ‘불신’이 한반도의 운명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탓에 더욱 그렇다.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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