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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무책임한 ‘MB발 통일논의’

등록 2010-10-05 19:46수정 2010-10-05 22:40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독일 통일 스무돌(10월3일)을 지켜보는 마음은 가볍지 않다. 통일 독일은 유럽연합을 넘어 지구촌 정치·외교의 중요한 구심점이 됐다. 동독지역의 1인당 소득과 평균임금이 서독지역의 70~80%에 이르는 등 동서 통합도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분단 65년이 지나도록 통일 전망조차 불확실한 우리로서는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분단시대는 전란이나 이민족 점령기와 더불어 일종의 난세다. 우리 역사에서 난세가 이렇게 길었던 기간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몽골 침략기 외에는 없었다.

지금의 분단시대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950~60년대의 ‘체제경쟁 1기’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적대하면서 각각 자신의 체제를 구축해나간 시기다. 어느 쪽도 확실한 우위를 주장할 수 없어 대립이 극렬했던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70년대 초반 국제적인 긴장완화 분위기를 계기로 ‘체제경쟁 2기’로 넘어간다. 그 상징이 72년 7·4 공동성명이다. 2기는 사회주의권 몰락이 분명해진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 뒤쪽으로 갈수록 남쪽의 우위가 분명해진다. 체제경쟁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91년 말의 남북기본합의서는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체제 재생산 위기에 빠진 북쪽은 정권을 지킬 새 담보물을 확보하려 한다. 핵개발 시도가 그것이다.

체제경쟁 이후의 과정은 분단의 위험성을 줄이고 상처를 치유하며 통일 기반을 넓히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는 ‘분단극복 1기’라고 할 수 있다. 핵심 과제는 평화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호혜적 남북관계와 핵문제 해결,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이다. 다음에 올 ‘분단극복 2기’에는 실질적인 통일 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한반도 경제·정치·생활권이 형성되고 동북아 국제관계가 그에 맞춰 재편된다. 각 시기가 20년씩 끊어지는 패턴이 이어진다면 이 시기는 2030년쯤 끝나게 된다.

지금은 분단극복 1기에서 2기로 넘어가야 할 때다. 과거 예에서 보듯이 시기 전환에는 한반도 정세 변화와 남북의 노력이 함께 작용한다. 정세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G2로 표현되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 주도 지구촌 핵 관리체제의 변화, 북쪽의 대중 의존 심화와 후계체제 시도 등이 그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제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경쟁과 협력을 되풀이하겠지만, 한반도 관련 사안의 평화적 해결에는 이해관계를 같이한다. 다음달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는 6자회담 재개로 향하는 새 동력이 만들어질 것이다. 북쪽의 3대 권력 세습 움직임은 분명 시대착오적이지만, 핵문제 논의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안정적인 대외관계와 외부 지원 없이는 북쪽의 권력재편도 순조롭게 이뤄질 수 없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북쪽이 단계적으로 개혁·개방을 시도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노력이다. 과거 경험을 봐도 우리나라가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반도 관련 현안이 왜곡되지 않고 속도감 있게 진전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통일세를 언급한 뒤 여권을 중심으로 통일논의가 무성하다. 이런 태도가 현실성을 가지려면 북쪽이 우리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대북정책부터 바꿔야 한다. 3년 전 남북이 합의한 10·4 정상선언의 일부라도 성실하게 이행됐다면 지금과 같은 서해상의 긴장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북쪽의 붕괴 또는 자발적 비핵화만을 기다리는 정부의 강경 기조 대북정책은 여전하다. 최근 통일논의는 이런 정책의 실패를 호도할 뿐만 아니라 당장 해야 할 일조차 방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 지금의 과제는 공허한 통일논의가 아니라 분단극복 1기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그렇게 방향을 잡아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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