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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여기가 로두스다(끝) : 소박한 자유인

등록 2010-12-26 20:14수정 2018-05-11 16:12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누가 한패 아니라고 할까봐, 최근 ‘보온병 포탄’을 ‘발명’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룸살롱의 ‘자연산’ 발언으로 일찍이 ‘마사지 걸’ 발언을 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호응했다. 또 오세훈 서울시장은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면서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벌거벗은 아이를 등장시킨 반대광고를 냈다. 맹자는 수오지심을 인간 조건의 하나로 꼽았는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도 그렇거니와 그들과 같은 기성세대의 일원이라는 점만으로도 청소년들 앞에서 충분히 부끄러운 나 또한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뻔뻔한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지나친 부끄러움은 지나친 분노보다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한편, 오늘 그들을 비난하는 젊은이들이 나중에 그 자리를 차지했을 때 그들과 달리 행동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도 사실이 아닐까? 나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런 자리에 오르면 뻔뻔해지는지, 아니면 뻔뻔한 자들이 그런 자리에 오르는지 정확하게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분노하면서도 그보다 부끄러움을 안고 젊은이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는 편을 택하는 이유는 사회 안에서 견제와 비판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때 앞으로도 계속 뻔뻔한 사회귀족이 활개치면서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잡초를 없앨 수는 없으나 뽑을 수는 있다”는 오래된 격언은 우리에게 ‘잡초를 없앨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에 오늘 잡초 뽑는 일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충고한다. 잘 알려진 스피노자의 “설령 내일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일깨워주듯이, 우리는 자칫 미래의 불확실성을 핑계로 오늘의 불성실을 대충 얼버무리면서 살아가기 쉽다. 그런 소홀함이나 불성실이 허접스런 세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우리 젊은이들에게 안겨주었을 수 있다.

사르트르가 ‘지금 여기’를 강조한 것이나 톨스토이가 누구나 그 답을 알고 있는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라는 물음을 남긴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우리 모두에게 단 한번 허용된 삶이며 되돌릴 수 없는 삶, 그 소중함을 아는 것은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 또 내 삶의 소중함을 아는 만큼 남의 삶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나를 작용시켜 내가 속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다.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자아를 실현하는 행위를 통하여 생존조건을 해결하는 사람을 자유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든 모르든, 우리는 모두 궁극적으로 자유인을 지향한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완전한 자유인’보다 ‘소박한 자유인’이 되라고 주문하는 것은 위의 ‘잡초’ 격언이 담고 있는 지혜와 무관하지 않다. 이 세상의 잡초를 모두 없애겠다는 큰 뜻을 품었다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잡초 뽑기조차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스스로 잡초가 되는 사람을 우리는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 완전한 자유인이 되기를 열망하지만 사회와 만나면서 간단치 않은 생존 문제와 씨름하다가 결국 소박한 자유인의 길마저 포기한 채 이 땅을 지배하는 물신에 귀의하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박한 자유인이란 소박한 생존에 머물 줄 아는 사람이면서 자아실현 또한 소박한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부자 되세요!”가 새해 덕담이 되고 기름진 생존이 목적이 돼버린 사회, 그래서 남과 존재가 아닌 소유물로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사회에서 소박한 자유인의 길도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다시 강조하건대,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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